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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칼럼니스트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했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눕는다는 뜻이다. 고국 고향에 대한 생각은 객지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강하다. 한국에서 추방당한 가수 유승준에게 더욱 절실했던 모양이다.

그는 17년간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20대 후반 비자 발급이 중단 되어 이제 그의 나이는 43세가 되었다. 1,2심에서도 낙관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17년간 가수 유승준씨의 입국을 거부한 정부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선고했다.

유씨의 가족들은 대법원 판결을 듣고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변호인에 따르면 미국 국적을 취득하며 병역을 회피했던 결정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승준의 고국방문에 대한 찬반 여론은 진행 형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유승준의 입국을 막아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고 본인이 자숙하는 한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한때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던 유승준. 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아직도 실망의 끈을 버리지 못하는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유승준이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중학교 다니던 해 부모를 따라 미국 LA로 이민을 떠났다. 호남형에다 근육질의 유승준은 미국에서의 학교생활이나 아이들과 싸움에서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소년 유승준의 우상은 흑인가수 마이클 잭슨이었다. 유승준은 부친을 통해 가수의 길을 모색했다. 마이클잭슨노래가 수록된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이 테이프가 인기가수를 길러낸 DJ 신철에게 전달 됐다. 비디오를 본 후 흥행을 직감한 신철은 즉각 유승준을 한국으로 콜 한다.

가수가 된 유승준의 댄스곡 '가위'가 크게 히트했다. 병상에 있는 여성이 남겨질 남자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이 곡은 주요 방송국의 음악프로를 석권했다. 유승준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유승준은 병역문제가 자신이 활동하는 음악무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기자들과 인터뷰에서는 군대에 입대한다고 공언했다. 팬들은 탄탄한 몸을 가진 그가 현역으로 멋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기대했다.

입영을 얼마 앞둔 2001년 유승준은 귀국 보증제도를 이용하여 해외로 출국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 출국 사유는 일본 고별 콘서트와 입대 전에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병무청은 일본과 미국 일정이 끝나면 바로 귀국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그의 출국을 허가해 줬다.

일본 콘서트가 끝나자 유승준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2년 1월 18일, 로스앤젤레스의 법원에서 미국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은 뒤 현지의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방문, 대한민국 국적 포기 신청 의사를 밝혔다. 많은 팬들이 실망하고 유승준은 배신의 아이콘으로 낙인 찍히게 된 것이다.

유승준은 그동안 공연차 일본이나 중국을 오갔지만 고국 땅을 밟을 수는 없었다. 이번 대법 판결을 듣고 유승준도 오열했다. 일시적 잘 못 판단으로 망친 17년, 조국 없이 떠돌았던 유랑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을 게다. 그보다 씩씩한 소년, 소녀로 커가는 네 명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조국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감동이 더 와 닿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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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윤현우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장

[충북일보] 윤현우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장. 충북 최초로 임기 8년의 회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다소 투박해 보이지만, 소신과 지역에 대한 사랑.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그래서 위기의 충북 건설협회 대표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화두가 된 청주 도시공원과 관련한 입장은 명확했다. 지자체를 향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충북 건설협회 최초로 4년 연임을 하게 된 소감은 "지난 1958년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가 설립된 이래 13명의 회장이 있었다. 저는 24대에 이어 25대까지 총 8년간 협회를 이끌게 됐다. 제가 잘해서 8년간 회장직을 맡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임기동안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 노력의 결과를 완성해달라는 의미에서 회원사들이 만장일치로 연임을 결정했다고 생각한다." ◇건설업계,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인가 "업계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전체 산업생산지수에서 건설업이 14%가량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민간공사를 빼면 1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체감된다. 충북도의 경우 발주량이 지난해대비 38% 정도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