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수업 중에 슬며시 뒤늦게 나타나는 녀석들이 있다. 웃음이 가득한 얼굴, 장난기가 그득한 웃음 뒤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의 힘은 대단한 긍정에너지가 된다. 등이 흠뻑 젖도록 한국어교실에 걸어서 오는 녀석들에게 즐거움이 되고, 행복한 기다림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러시아에서 온 2학년 친구가 수업이 시작 된 후 살짝 문을 열고 얼굴 먼저 내밀며 싱글벙글 보는 사람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한 손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들려져 있었다. 내미는 은행잎을 받으려는 순간,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반대쪽 손에 숨겨진 막대기를 잽싸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놀라는 나의 표정을 보며 아주 통쾌하게 웃는다. 교실 가득 웃음꽃이 피고 다음 날에는 다른 아이들도 즐거운 비밀을 만들어 행복한 표정으로 달려온다.

얼마 전 지나간 핼러윈 파티도 아이들 스스로 만든 설렘 가득한 비밀 파티였다.

핼러윈 데이는 10월 31일이며 새해와 겨울의 시작을 의미하는 날이다. 아일랜드 켈트 민족의 풍습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아이들은 얼굴에 무섭게 분장을 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호박등이 켜진 집에 들어가 사탕 등 음식을 얻어먹는다.

한국어교실에도 일찌감치 핼러윈 문화가 찾아왔다. 주황색 풍선에 그림을 그려서 한쪽 벽면에 장식을 했다. 검정색 바탕에 핼러윈 축제를 알리는 제목을 붙이고 다양한 장식을 꾸밀 때는 서로 의논을 하면서 호박등, 박쥐, 거미 등을 개성 있게 표현했다. 다투거나 큰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사이좋게 하나가 되어 만드는 일을 분담한다.

10월 31일 핼러윈 데이가 되니 녀석들은 저마다 파티 준비를 해 왔다. 그것 역시 아이들이 소곤소곤 비밀스럽게 준비해 온 것이다. 초콜릿, 과자, 사탕 등 먹을 것과 얼굴에 분장 할 것도 챙겨왔다. 한국어교실 친구들이 비밀리에 만들어가는 파티를 알기에 나도 비밀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케이크를 준비했다.

핼러윈 데이에 녀석들의 발걸음은 둥실둥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즐거워보였다. 그리고 서로 대화하는 말소리도 평소보다 톤이 높아 흥분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녀석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뒤에 나타난 녀석들은 저마다 얼굴에 붉은 칠, 검은 칠을 해서 무섭고 험상궂은 표정을 꾸몄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며 웃고 또 서로 분장을 도와주기도 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서운 표정을 연출했으며 무엇보다도 함께 했다는 것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에서 온 우리 친구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함께 공부하면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하게 되니 덤으로 배우는 것이 더 많은 듯하다.

핼러윈 파티에도 '나는 무엇(누구)일까요?' 문제를 준비하여 앞에 나와 발표를 했다. 작은 책을 만들어 문제를 준비를 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한국어 실력이 향상 되었다.

아이들이 문제를 만들다가 모르는 어휘는 질문을 한다. 어떻게 쓰는 것인지, 혹은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등 문제를 만들며 스스로 공부를 하게 된다. 아울러 동물, 식물, 물체, 국가 등으로 주제를 정하게 되면서 깊이 있는 학습 효과를 얻게 된다. 서로 자신의 고향에서 유명하고 맛있는 음식이나 재미있는 축제 등을 문제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어느 때는 물속에 있는 것들을 찾아 문제를 만들고, 때로는 숲 속에 있는 것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 흥미로운 문제를 내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어가는 수업, '나는 무엇(누구)일까요?' 비밀의 힘은 아이들에게 달콤하면서 지혜를 얻게 만드는 귀한 시간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