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21.04.29 16:06:50
  • 최종수정2021.04.29 16:07:11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사진이 도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짙푸른 초록의 밀밭이다. 멀리 안개 속으로 희미한 마을이 보인다. 한참을 넋을 잃고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직접 주스를 만들어 마시는 장면의 사진도 있다. 히잡과 또삐(남자들이 쓰는 모자)를 쓴 어린 가족들도 즐겨 마신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더 보내왔다.

남아시아 파키스탄 사르코다에서 제자가 보내 온 사진이다. 그 사진 속에는 파키스탄의 생활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국민의 97% 이상이 무슬림이다.

한국에서 5년 정도 일을 한 제자는 사업을 계획하고 올 2월에 고향 파키스탄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국어가 비교적 유창하고 성실하여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일했고 인기도 많았다. 하루 5차례 기도를 해야 하는 무슬림이었기에 다소 불편함이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해주며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허용해 줬다는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로 불편한 점이 없진 않았겠지만 지혜롭게 생활하면서 적응했다.

그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기 전, 커피숍에서 만났다. 파키스탄에서는 주로 짜이를 자주 마시는데 그는 한국에서 생활하면서도 늘 짜이를 직접 만들어 마신다고 했다. 물론 커피도 마신다고 했다.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정말 커피를 마셔도 괜찮으냐고, 내가 장난스레 여러 번 물어보았으며 우리는 또 웃었다. 처음 한국에 와서 가차 없이 커피를 거절하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주 보고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슬림 국가에서 온 제자는 한 마디로 돼지고기와의 전쟁을 시작한 사람과 같았다. 종교적으로 돼지고기를 꺼리는 무슬림 문화에 따라 철저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보니 그가 회사에 출근한 첫날 처음 마주한 회사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건네받은 커피를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다. 그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것이 커피에도 돼지고기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주저하지 않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기억을 떠올리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그가 가끔 안부를 물으며 근황을 전해온다. 한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떠나기 전에 제자가 시 한편을 카카오 톡으로 보내왔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보내며 이 시가 참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어가 제법 유창하여 농담을 할 줄도 알고 시를 이해할 정도로 언어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제자가 자녀를 네 명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있으며 특히 첫 아이는 꼭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알려주었다. 구체적으로 첫 아이가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기도할 때 잊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다섯 번 모스크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으며 계획한 사업도 준비를 거의 다 마쳤단다. 하지만 한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돌아간 지 두 달이 넘어 3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람을 직접 만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만 하고 있다고 한다. 궁금하여 물어보니, 올해 결혼을 할 것이며 결혼을 할 때까지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더더욱 궁금해진 나는 여러 차례 질문을 했다.

제자는 대뜸 '그것은 파키스탄의 아름다운 문화예요!'라고 하며 말을 이어갔다. 결혼을 약속하기 전에는 서로 만난 적이 있지만, 결혼을 약속한 후에는 결혼할 때까지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어머니의 말을 따르고 있으며, 이어서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라마단 기간을 맞이하고 있는 제자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