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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햇볕이 이렇게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이토록 아름다운 나무의 초록을 여유 있게 본 적이 언제였던가. '감고을 영동 편백숲'을 찾았다.

구불구불 산길을 접어드니 공기부터 달랐다. 햇빛에 빛나는 찬란한 초록과 맑고 투명한 하늘, 거기다가 귀를 씻어주는 계곡 물소리가 아주 생기롭게 들려왔다. 새소리, 매미소리, 풀벌레 소리에 숲이 더 활기차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다소 구부러진 길에 멀미가 나서 좀 불편했지만 곧 산길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 휘어지는 산길을 따라 사방으로 겹쳐진 숲과 계곡의 어우러짐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길, 휘어진 길에서 엿볼 수 있는 맛은 몸이 먼저 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르다가 다시 아늑한 산속으로 들어가 목적지에 도착하니 숲과 하늘만 보였다. 뼈대 같은 여러 줄기의 계곡을 품은 편백숲에 안기고 보니, 물소리도 숲의 향이나 바람의 촉감도 그저 달기만 했다. 코로나19로 몸에 일부분처럼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가 인적이 거의 없는 숲속에서 마스크로부터 벗어난 것도 훨씬 더 큰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비가 그친 계곡에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손을 담그니 바로 더위가 가셨다. 먼저 편백나무를 만나러 숲으로 향했다. 원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숲길을 걸었다. 인적이 드물어 오롯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푸짐한 목수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금드리 잡목들이 말을 걸어왔다. 남보랏빛 닭의장풀, 노오란 애기똥풀, 진노랑 나리꽃, 숲속을 밝히는 새하얀 취꽃 등등 저마다 이름 불러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바닥에 깔린 질경이와 주름조개풀도 키를 세우며 시선을 끌었다. 여우빛처럼 드문드문 햇살이 들어오는 숲, 그 숲에 숨은 길조차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시멘트 포장길이 아니어서, 잔뜩 꾸민 데크 길이 아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자연그대로 받아들이는 편백숲 주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더 좋았다.

오금드리 잡목을 지나니 아름드리나무들이 곧게 뻗어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 사랑의 거리를 두고 어우러져 있었다. 길 가장자리에는 쪽동백, 국수나무가 늘어져 자라고 으름넝쿨과 다래덩굴이 으름과 다래를 품고 자기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우슬초, 홀아비풀, 천남성 등도 요소요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길을 걷다보면 바람길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간간이 힘을 보태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양팔을 벌려 땀을 식히며 자연의 소리, 나무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곤 했다. 비탈진 곳에서도 편백나무는 흔들리지 않으며 곧게 쭉쭉 뻗어 올라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어깨와 허리를 쭉 펴고 고개도 곧게 펴 보곤 했다. 편백나무는 살아서도 생명을 다한 후에도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귀한 나무다. 사람에게 이롭다는 피톤치드가 풍부한 편백나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며 잎의 뒷면에 Y자 모양의 숨구멍이 모여 있다. 나무들은 서로 간격을 유지하며 자란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 쪽으로는 불편하지 않도록 스스로 가지를 떨구고, 수분이 충분하다 싶으면 물을 자연으로 보내 계곡물을 만든다.

편백나무 숲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숲에 누워 듣는 물소리, 바람소리, 풀벌레소리 등 작은 소리 하나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큰소리로 떠들거나 소리내서 웃는 것이 오히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앞에, 길게 뻗은 편백나무 숲에 자연스러운 거리와 질서가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길이 난 쪽으로는 나무들도 가지를 거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산책을 할 때마다 풀, 나무, 꽃 이름을 불러주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또 조용히 숲의 질서를 되새기며 이름을 불러주면서 숲길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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