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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전화를 걸 시간이다. 어김없이 오후 다섯 시 무렵이면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안부를 묻고 하루의 안녕에 감사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들리는 음성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나 건강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밝고 힘이 있는 날에는 나도 덩달아 마음이 가볍고 기분이 좋다. 한편 기운이 없고 낮은 음성의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 날에는 종일 마음이 무겁고 어깨도 축 늘어져 하는 일도 즐겁지가 않다. 그런 날에는 애써 즐거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나도 모르게 더 수다스러워지곤 한다.

부쩍 요즘 들어 어머니와 통화 시간이 더 길고 다정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에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새로운 추억이 생겼고, 뭔가 공감하며 나눌 이야기가 옹달샘에 물이 고이듯, 하면 할수록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지난 주에 어머니를 모시고 경기도 여주에 있는 이모님 댁에 다녀왔다. 집에서 출발하여 1시간 좀 넘게 걸리는 일정이었지만 매우 특별한 여정이었다. 아혼을 바라보는 연세의 어머니는 몸이 많이 불편하시다. 등은 굽고 허리와 무릎 관절의 이상으로 걸음을 자유롭게 걷질 못해서 지팡이에 의지해 집안에서만 겨우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 갈 때 외에는 나들이 한번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조차 시간이 꽤 걸렸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뛰어다니던 들과 산을 눈으로만 바라봐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힌 일이었다. 농번기에는 절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름을 해야 하고 풀을 뽑는 등 일의 순서에 따라 부지런히 뛰어다녀도 일손이 부족한데…. 어머니는 한숨을 쉬고 혀를 차며 괴로워하셨다. 아울러 그런 당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만남의 기회가 있어도 회피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대하는 일이 조심스러울 때가 많았다. 혹여 마음을 다치게 할까봐 말 한마디는 물론 매사에 신경이 쓰였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발자국을 떼며 온전하게 걷기 위해 안간힘을 쓰셨다. 지친 표정으로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안 생기냐며 힘들다고 하실 때도 있었다. 가끔 경기도 여주에 사시는 큰이모나 충주에 사시는 작은이모, 청주에 사시는 외삼촌이 만나서 맛있는 밥이라도 먹자고 연락을 하면 어머니는 극구 사양을 하셨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을 하곤 했다. 그렇게 전화 통화만 하다가 지난 추석에는 갑작스럽게 외삼촌이 이모 두 분을 모시고 오셔서 식당에서 남매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막상 만나고 보니 모두 반가워하셨다. 어머니도 당신의 거동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거절을 했었지만 만나고 보니 서로 반가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추억을 떠올려 즐거운 시간을 맞이했다.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지니 아쉬움이 크게 남은 것 같았다.

늘 거절만 하시던 어머니가 그 후, 밝아지셨다. 표정도 밝아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느껴졌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한번은 통화를 하는데, 기분 좋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엄마, 우리 여주 이모한테 놀러 갈까?' 어머니께 여쭈니 바로 대답을 하셨다. '그래! 너 시간 될 때 여주 놀러 가자. 너 시간 있어?' 우리는 그렇게 통화를 하면서 여주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날부터 통화를 하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고 또한 기다려졌다.

여주에 가는 날 아침, 우리 모녀는 분주한 시간을 마주했다. 어머니는 설레는 표정으로 여주 이모님 댁에 가져갈 선물을 준비하며 며칠 전부터 행복한 모습이었다. 버섯, 사과, 귤, 애호박 등을 그윽하게 바라보셨다. 그리고 무엇을 입고 갈까? 장롱을 열어 놓고 모녀가 옷을 찾아 들어 보이며 온통 방안 가득 옷을 늘어놓았다. 마치 소풍을 가기 전 설레서 잠 못 이루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이 그려졌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늘도 전화를 받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밝다. 그 음성을 들으니 편안하고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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