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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이른 아침 영화를 보았다. 중국에서 온 대학원 후배와 더불어 함께한 귀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언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영화 '말모이'가 주는 의미의 파장은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 135분 동안 그랬다.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시간 내내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울다가 웃고 그러다가도 가슴 졸이며 긴장하는 순간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나 스스로에게도 질책과 격려를 보냈다.

영화 각본과 직접 연출을 맡은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영화 '말모이'는 우리가 우리말을 사용할 수 없었던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지키고자 애썼던 조선어학회 활동을 중점적으로 조명한 작품이다. 영화를 찍는 내내 외래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후일담을 듣고, 현장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사람으로서 고맙고 또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외래어를 쓰지 않고 피하기가 더 어려웠으며 어떤 단어는 외래어가 익숙하게 쓰이다보니 오히려 우리말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대목일 것이다. 신조어나 은어 또는 무조건적으로 줄여서 사용하는 말 등 다양한 우리말의 변화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ㄷㅂㅇ ㅎㄲ'.

문득 떠오르는 어절이다. 초성으로 연상하기에 제시된 5개의 자음이다. 수업 중 내가 자주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문화다양성 교육을 위한 충청북도국제교육원 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는 다문화교육 전시체험관이 있다. 전시체험관에 들어가기 전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마음을 여는 의미로 자주 제시하는 퀴즈이기도 하다. 문화다양성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이 퀴즈에 집중을 하고 순간 조용해진다. 그리고 자유롭게 연상되는 어절을 말한다.

'공부를 할까', '더불어 민주당', '도망을 할까' 등등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가장 큰 웃음을 주었던 대답은 지금 생각해도 또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어느 남학생의 대답이었는데, '도박을 할까' 였다. 반 학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통쾌한 대답이었다. 의도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시원한 웃음으로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웃음이 잦아들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고 '더불어 함께' 라고 알려주자 시시하다는 반응과 웃음이 쏟아졌다. 학생들이 흥미로워하던 북한말에 대한 수업도 간간이 생각난다. '도넛'을 북한에서는 '가락지빵'이라고 하는데, 한 학생이 도넛은 자동차 타이어처럼 생겼으니까 '타이어빵'이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호떡, 민들레, 동지(同志), 우리, 엉덩이, 가위, 후려치다, 휘갈기다 등 영화에서 언급했던 귀한 단어들이 살붙이처럼 살갑게 귀에 달라붙었다. 영화 장면과 단어에 관한 대사들이 귓가에 자꾸 맴돈다. 사투리 하나까지 지키려 애쓰던 선인들의 발자취와 명장면들이 영화의 쫄깃한 맛을 더했다. 역사의 아픔을 딛고 지켜온 우리말이기에 거기다가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력이 가미되어 감동을 더했다. 민들레꽃과 동지(同志)를 이야기하며 화해하는 장면, 호떡을 두고 부녀간에 나누는 대화는 돋보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글을 모르던 판수가 조선어학회에 나가게 되면서 글을 깨우치고 거리의 간판을 읽으며 어느덧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며 우는 장면 또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영화와 관객이었지만 우리는 더불어 함께였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얼마나 많은가· 새삼스럽게 이 영화를 접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성의 시간이 되고, 소중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니 다행스럽고 고마운 시간이 되기도 했다. 영화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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