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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숲을 생각했다. 온통 나무 이파리가 재잘대고, 매미가 허공을 가득 채우고 새의 날갯짓이 귓전에 닿을 듯 맴도는 그 숲길을 걸으면서도 내 안의 숲을 생각했다. 그 숲길을 걸을 수 있고 한편으로 내 안에 숲이 있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고맙기 그지없다. 내 곁에는 항상 숲이 있었다. 또한 내 안에도 늘 숲이 있다. 그리하여 삶이 훨씬 더 풍요로우며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여유도 있는 것이리라.

더위에 잠시 쉬면서 책을 읽다가 박인옥 시인의 '니이체 숲속'을 만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숲속에도 내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의 서재에는 책이 가득했다/겨우 아는 한글 몇 자로 읽어보려 애쓰던 책들/그중에 니이체 全集이 있었다/눈을 껌뻑이다가 全자가 숲자와 비슷해서/나는 니이체 숲속이라고 읽었다/그림 한 점 없는 그 숲에서/듬성듬성 돋아있는 한자는 풀 같고 나무 같았다/니이체 全集이라는 금박의 글자를/니이체 숲속이라고 읽던 내 마음의 푸나무들/나이가 들어서 나는 니이체의 책장을 열고/큰 나무의 넓은 잎새를 들여다본다/중심을 향해 모이고/중심에서 퍼져 나가는 모세의 잎맥 하나가/숲과 이어지듯 생각은 길이 된다/쓰라린 날들의 진액이 나무줄기 여기저기에서/수액처럼 천천히 흘러내린다/어려움을 견뎌내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그가 고난의 한가운데에 심은 잠언 한 그루는/나의 숲에서도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했다/나는 어느새 그 그늘 아래 앉아 있다/올려다보면 황금색 털 덥힌 열매들이/금세라도 떨어질 듯 잎새를 잡아당긴다'

올여름 무더위 속에 나는 이 숲을 더 자주 걸었다. 눈으로 걷고 입으로 걷고 생각으로 걷다가 나의 숲을 찾아 온몸의 세포를 열고 걷기도 했다.

어릴 적 나의 숲에는 상록수가 있었다. 상록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상록수를 좋아했다. 심훈의 '상록수'를 참 좋아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들과 산을 누비며 강과 하늘을 보고 자란 나는 상록수가 꼭 나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상록수에 나오는 박동혁이 아버지이며, 채영신이 어머니인 줄 알며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상록수를 쓴 작가 심훈의 본명이 나의 아버지와 같았기 때문이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알게 되면서 내 안에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었던 셈이다. 그 비밀이 숲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무와 풀과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한 시간씩 흙길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다. 징검다리를 건너, 논둑길을 걷고 도랑에 풀잎을 띄워 흐르는 물을 따라 춤을 추듯 떠가는 풀잎과 경주를 하며 걷기도 했다. 풀이 많고 울퉁불퉁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도랑물과 헤어져야 하는 곳에 이르게 되고 그쯤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그곳에서부터 학교까지는 길이 평평하고 넓어서 좀 더 빠르게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시간 정도는 꼭 걷는다. 학교 안에 있는 숲길을 걷는다. 시원스럽게 뻗어 올라간 메타세쿼이아 숲에서는 목을 길게 뽑아보고, 몸을 뒤로 젖혀 하늘에 박힌 우듬지를 올려다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팝나무가 즐비한 숲을 걸을 때는 나직나직 뽀얗게 떨어지던 꽃을 생각하며 함께 걷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소나무의 향기를 내뿜으며 멋지게 휘어진 곡선을 따라 공중에 펼쳐 보여주는 섬세한 잎을 바라보면서 기도 같은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노을 속에 잠긴 소나무와 달빛 속 소나무의 자태를 보면 부드러우면서도 꼿꼿함을 가진 저력을 엿볼 수가 있다. 숲길을 걸으며 꽃 이름, 풀 이름을 부르고 나무 이름도 불러 주다가 시를 낭송하기도 한다. 갑자기 매미 소리가 커질 때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함께 걷던 사람들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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