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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특별한 며칠이 생겼다. 11월의 중턱에서 맞이하게 된 행운 같은 소중한 며칠이다.

다문화교육지원센터 공사로 인해 며칠 동안 차 없이 출근을 하게 되었다. 차를 어디에 주차해야 하나· 제대로 주차할 공간이나 있을까?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머릿속에서 뒤엉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수업에 늦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청주실내체육관 앞에 주차하고 좀 걸어갈까? 아니면 서원구청 근처는 어떨까? 그래, 혹시 모르니까 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일단 한번 가 보자, 마음을 먹고 반신반의하며 먼저 체육관 앞으로 갔다. 주차공간이 영 눈에 띄지 않아 내심 걱정하며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던 차에 겨우 주차 공간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주차를 했다는 사실과 수업 시간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온화하게 했다.

일교차가 심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자주 들렸는데, 요즘 유난히 찬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게 느껴졌다. 다문화교육지원센터로 올라가는 길에 바람과 햇볕이 깃들었다. 차로 빠르게 지나쳤던 길이 새롭게 다가왔다. 낯선 얼굴 뒤에는 곱게 물든 이파리들이 바람의 힘으로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리고 샤르락샤르락 소리를 내며 꼬마들처럼 몰려다녔다. 노랑, 빨강, 주황, 갈색 등 다채로운 빛깔이 1년의 노고를 알게 해 주었다.

몸이 흰 자작나무의 연노랑 빛깔의 이파리들이 겨울 채비를 하고 있고, 꽃처럼 붉은 잎을 단장한 남천도 걷는 길을 아주 흥겹게 만들었다. 한편 계절을 잊은 듯 토끼풀 꽃이 추위를 피해 나무 아래 숨어서 피고, 영산홍도 더러더러 분홍빛 꽃을 숨기고 있었다. 늦가을에 조무래기들처럼 보이는가하면 신비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걷는 길 위에는 흩어진 크고 작은 단풍잎들이 발을 내디디기가 어려울 만큼 곱고 예뻤다.

문득 우크라이나에서 온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생각났다. 이 길을 걸어오는 녀석은 늘 무언가를 들고 온다. 요즘은 도토리 챙기는 다람쥐처럼 곱게 물든 단풍잎을 가지고 온다. 빨강 산수유 열매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점퍼 주머니 가득 단풍잎이 들어 있을 때가 있고, 어느 날은 두 손 가득 움켜쥐고 올 때도 있다. 한번은 걸음을 천천히 걸으며 눈길은 손에 머물고 입으로는 선생님을 부르며 온 적이 있다. 아이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손에 들린 단풍잎들을 책상 위에 순서대로 가지런히 올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다급하게 말하며 내 손을 이끌었다.

"선생님, 이 것 좀 보세요!"

웃음 가득한 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책상 위를 가리켰다.

아주 작은 나뭇잎부터 크기가 점점 큰 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신기해하며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와! 나뭇잎이 계단 같다!"

순간 나는 나뭇잎이 계단 같다고 말을 했다.

평소에도 워낙 재치가 많은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눈치 채고,

"아, 그럴 수도 있지만, 이 건 도레미파솔라시도예요."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표현했다.

너무도 그럴싸해서 맞다고 맞장구를 치며 나뭇잎을 친구들과 함께 보았다.

나뭇잎을 작은 것부터 차례대로 모으며 걷는 길이 행복했을 아이를 그려보면서 모든 아이들이 소중한 우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울러 그 소중한 우주 옆에 있는 내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새삼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며칠 이 길을 걸으며 늦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어 값진 가을 여행을 한 기분이다. 찬바람 속 하늘, 가을 나무, 나무 아래 아직은 초록을 숨기고 있는 풀, 저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과 빛깔의 단풍잎…. 나에게는 행운 같은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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