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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연말에 만난 추위가 예사롭지 않다. 매운바람에 퍼붓는 눈까지 겨울의 맛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창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날씨의 동태를 살피느라 좌불안석이다. 눈의 눈치를 보며 며칠을 지낸 것 같다.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비가 내리다가 다시 눈이 내리는 날씨 앞에, 어느 장단에 맞출 수 없어, 그냥 우두커니 먼 산을 바로 보고 선 나도 눈이 되었다가 비가 되었다가 진눈깨비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순간 여우볕이라도 나면 몸이 따스하고 가뿐해진다.

몸에 온기가 돌자 그제야 거실에 들어온 화분의 화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란은 길게 쭉쭉 뻗은 가지를 한껏 올려 차례대로 꽃을 피워나갔다. 거실 안쪽에 놓인 칼랑코에는 셀 수도 없는 꽃봉오리들을 주먹처럼 움켜쥐고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가 자생지인 칼랑코에가 나에게 온 것은 지난봄이었다. 집에 핀 선인장 꽃이 너무 아름다워 작은 화분에 심어 주변 선생님들과 나눈 일이 있다. 그 후에 아침마다 만나는 선생님이 칼랑코에를 분양해 준 것이다. 햇볕 잘 드는 베란다에서 칼랑코에는 잘 자랐다. 진초록 이파리에서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가지가 벌더니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칼랑코에를 분양해 준 선생님은 꽃처럼 마음이 곱고 따뜻하다. 감자가 나오는 철에는 아침 출근길에 찐 감자를 주머니에 슬며시 넣어 주셨다. 여름에는 직접 재배한 탱글탱글한 토마토를 손에 쥐어 주셨고, 가을에는 군고구마를 또 그렇게 주머니에 챙겨 주셨다. 겨울이 되자 부드러운 연시를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나는 출근길이 기다려지는가 하면 고마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했다. 그 후, 칼랑코에 꽃을 보면 다정하고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마치 꽃 속에 숨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신기한 일이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되자 떠오르는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네팔이 고향인 제자가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회사에 다니는 제자는 주야간 근무를 하면서도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며 회사에서도 직책을 맡아 리더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편 러시아가 고향인 제자는 영주권을 취득하여 부지런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 크리스마스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반갑게 만난 우리는 부둥켜안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러시아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함께 했다. 제자는 작년 겨울에는 러시아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올해는 한국에 눈이 많이 내리고 미국과 일본에도 눈이 많이 내려서 걱정이라며 항상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눈길을 걸으며 설 명절에 만날 약속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저녁에는 4시간 늦은 시차를 건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경영대에 있는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울러 겨울 방학에 꼭 여행지로 우즈베키스탄을 선택해 달라는 부탁에 가까운 초대 메시지였다. 그는 방학 때마다 초대를 한다. 학회에서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온 일이 있었는데, 벌써 몇 년이 지나 우즈베키스탄의 여러 도시인 타슈켄트, 부하라, 사마르칸트 등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산들의 기억이 흐려지고 있다. 이번 방학에도 여행을 할 여유가 없다고 하자, 제자가 우즈베키스탄 곳곳의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 속으로 이미 여행을 시작했다. 눈 덮인 설산을 오르고, 아름다운 카펫이 깔린 시장을 지나 도자기로 빚은 전통 찻잔과 주전자를 구경하며 단숨에 시간을 되돌렸다. 그때 다시 메시지가 왔다. 다음에는 꼭 우즈베키스탄으로 여행을 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고맙다는 답을 보내며 끝에 '라흐맛'이라고 적었다. 우즈베키스탄어로 고맙다는 말이다. 제자가 고맙다며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또 보내왔다. '라흐맛! 고맙습니다!'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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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