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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여름 더위 한가운데에 서 있다.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더위와 코로나19 이야기가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고도 긴장되게 만든다. 더러 눈에 띄는 초록 속에 핀 분홍빛 배롱나무꽃이 희망처럼 다가오고, 선명하게 핀 무궁화꽃이 위로가 되기도 하는 한여름이다. 어릴 적 여름 방학을 맞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뭔가 밍근하여 집안을 서성거리다가 뒤란 무궁화 울타리에서 자주 만나던 꽃이 바로 무궁화였다.

문득 여름 방학을 맞이하고 있는 학생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선생님,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여름 방학 전 한국어 수업 시간에 우즈베키스탄이 고향인 한 학생이 눈물을 닦으며 건넨 말이다. 농구를 잘하며 체육시간을 좋아하는 녀석은 매우 활동적이며 늘 이마에 흐르는 땀에 머리카락이 젖어 있었다. 표정 또한 밝아서 마주하고 있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만난 녀석은 보기 드물게 소소한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어느 날은 농구 이야기, 어느 날은 급식에 나온 음식 이야기, 어느 날은 할머니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 이야기 등등 자주 이야기를 풀어 놓곤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할 때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도와주며 배려하고 기다려 주면서 양보하는 편이다.

그런 녀석이 방학을 앞두고 눈물을 보인 것이다. 방학을 달가워하지 않는 의외의 모습에 좀 신경이 쓰였다. 농구공을 가지고 다니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농구 동아리 활동을 하는 날에는 더 말이 많아지곤 했다. 그런데 방학을 앞두고 방학이 왜 있는 거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즈베키스탄 이야기와 한국 이야기를 같이 나누면 즐겁다고 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니까 좋아요. 이렇게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요. 저는 비밀이 많아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은 친구가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있고 동아리 친구들도 있지 않느냐고 하자 자신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고, 피자와 떡볶이를 좋아하는 녀석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방학이 되길 바란다.

한편, 러시아가 고향인 한 학생은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슬픈 방학이 됐단다. '선생님, 울고 싶어요! 한국의 방학은 안 좋아요. 러시아에서는 방학에 공부 없어요. 쉬기만 하면 돼요' 우는 흉내를 내며 억울하다는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학이라면서도 날마다 학원을 가야하고 또 다른 학원 수업까지 있어서 학교에 다닐 때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울고 싶다는 말보다 더 거친 표현도 했다.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이라 자신의 감정 표현을 잘하는 녀석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칭찬도 해 줬다. 그러자 녀석의 표정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학업상을 수상한 것에 대한 칭찬과 비전을 제시해주었다. 이내 녀석의 표정은 밝아졌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찾는 눈치였다.

여름 방학! 우리들의 여름 방학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누구나 기억 속에 방학의 다양한 추억들이 묻혀 있을 것이다. 계획을 거창하게 세웠던 방학, 세웠던 계획이 단 며칠 만에 사라진 방학, 마냥 놀기만 하다가 방학이 끝나갈 무렵 후회와 아쉬움에 괴로워하던 기억…. 방학이 달갑잖은 녀석이나, 울고 싶은 녀석에게도 부디 즐겁고 행복한 추억의 여름 방학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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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