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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사람은 사람인데 움직일 수 없어요. 나는 나는 무엇일까요?"

"저요! 얼음?"

"저요! 죽은 사람?"

"땡! 아닙니다. 나는 나는 사람은 사람인데 말을 할 수도 없어요."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탁구 치듯이 왔다 갔다 한다. 서로 주변을 둘러보고 눈빛을 교환하지만 딱히 정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손을 번쩍 들고 '나는 무엇일까요?' 퀴즈를 내겠다며 달려 나온 학생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초등학교 2학년생이다. 발음이 좀 정확하지 않은 대목이 있긴 해도 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림을 잘 그리는 꼬마 예술가다. 신학기에 처음 만났을 때는 수줍어하며 다가와 귓속말을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표현을 자유롭게 하며 제법 고집도 내 세울 줄 안다. 더구나 오늘 같은 날은 얼굴에서 빛이 날 만큼 자신감이 가득하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정답을 맞히지 못하자, 흐뭇하게 미소를 보이며 '눈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모두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며 한편으로 부러워하기도 했다.

10월 한국어교실에서는 발표 수업 일정을 많이 계획했다. 전래동화와 짧은 동영상 자료를 활용하여 보고 듣고 읽고 말하기를 통하여 통합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역할을 분담하여 동화로 표현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다. 때로는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쉬지 않을 때가 있다. 수업을 마칠 시간이 돼도 공부 더 하면 안 되느냐고 물으며 기특한 떼를 쓰기도 한다. 그럴 때 녀석들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숙제를 내는 것이다. 지루한 숙제가 아니라 '재미있는 숙제'이기에 행복은 덤이다.

'나는 무엇(누구)일까요·' 문제를 집에서 생각해 오는 것이 바로 그 재미있는 숙제다. 얼핏 보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숙제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숙제를 낼 때, 우리 학생들에게 어렵거나 부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주제를 찾다보니 내가 먼저 즐거워진다.

특히 이번 숙제는, 학생들이 절로 신이 나서 만들어 오는 숙제가 되었다. 첫 번째 숙제 발표를 할 때는 깜박 잊어버렸다고 하더니, 두 번째 숙제 발표하는 날에는 작은 책을 만들어 '나는 무엇일까요·' 제목을 붙이고 그림까지 곁들여 문제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래서 발표하는 시간에 모두 집중하는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두 명씩 서로 팀을 구성하여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힌트까지 준비해서 칠판에 판서를 하며 문제를 내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자연스럽게 숙제를 하면서 즐거워하게 되고, 어느덧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팀이 나왔다. '나는 무엇일까요·'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맞히는 친구에게 상품을 준다는 것이다. 막대사탕, 젤리, 과자 등이 행복한 상품으로 등장했다.

때로는 문제가 좀 어설프고 문제답지 못할 때도 있지만, 소극적이던 학생들도 자신 있게 앞에 나와 문제를 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게 되었다. 학생들이 준비한 문제 속에는 국가, 음식, 사람, 동물, 꽃, 옷 등 생각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주제가 담겨 있어서 모두 함께 배우는 수중한 시간이 된다.

문제를 내면서 힌트를 줄 때는 글자 수에 맞도록 자음을 칠판에 제시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자음을 보면서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연상하며 대답을 한다. 손을 번쩍 들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단어를 제시하고 정답이면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오답이면 다음에 기다리던 학생이 기대에 부풀어 손을 더 높이 들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이 많아 예상하지 못한 문제와 정답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 자연스레 알려주고 모르던 학생은 바른 표현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늘도 한국어교실 학생들은 재미있는 문제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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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