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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뜻밖에도 아주 생경하고 특별한 2020년을 맞이했으며 지금은 배웅하는 중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힘겨운 한해를 열면서 온라인으로 학생들을 만나야만 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을 하면서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배우는 중에 있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시간은 흐르고 1년을 마무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어 수업을 마무리하게 되면서 강사들의 보수교육이 이어졌다. 다문화전문가 보수교육과 신 교재에 관한 교육에 이어 강사 워크숍까지 계획되어 있어 숨 가쁜 12월을 보냈다.

다문화전문가 보수교육에서 만난 벨기에가 고향인 줄리안, 그의 특강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온 지 17년이 된 그는 자연스럽게 경험담을 통하여 현장에 있는 강사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강사들은 소통할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또한 외국인 230만 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통의 필요성과 아울러 서로 달라도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도 언급하였다. 처음에 한국어를 배우며 '안녕히 가세요.' 와 '안녕히 계세요.'를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보고파'와 '배고파' 역시 구분이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강 마무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5~6 명을 기억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수천~수만 명을 기억한다.'는 말과 함께 책임감도 일깨워 주었다.

줄리안의 특강을 듣는 내내,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중도입국자녀, 결혼이민자, 유학생, 근로자 등등. 특히 러시아가 고향인 알렉산더와의 학교생활이 그림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알렉산더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았다. 1년을 지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작은 발표에도 칭찬을 해주며 기다려주었다. 그 결과 지금은 교실 게시판에 있는 '식단표'를 보고 그날의 식단을 읽어주는 학생이 되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식단표에 나오는 메뉴는 대부분 낯설고 어려워 함께 사전을 찾아보며 어휘를 학습할 수 있는 짧지만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 주곤 한다. 자신감이 생긴 알렉산더는 칠판을 지워야 할 때면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이 칠판을 지우겠다며 자신 있게 걸어 나온다. 한번은 수업 전, 이른 아침에 교실 책상을 소독한 후에 닦고 있는데,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며 책상을 모두 닦아주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아니 자신감 있게 표현할 줄 알게 된 알렉산더가 너무 기특하고 대견해서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다. 그렇게 변화를 거듭한 알렉산더는 수업 중, 책을 읽을 때도 재미있는 목소리를 내서 종종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는 항상 주말을 지내고 학교에 등교하면 주말에 경험한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많은 학생들이 귀찮다는 듯이 짧게 이야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얼마 전, 알렉산더가 '샤오르마' 먹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샤오르마'는 러시아 음식으로 얇은 빵에 고기와 채소를 넣고 말아서 먹는 음식이다. 알렉산더는 샤오르마를 먹은 식당을 말하며, 식당에 갈 때 걸어가려고 했는데, 마침 버스가 와서 버스를 타고 갔다고 했다. 이어서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고 맛있게 먹었다며 그날의 기분도 표현을 했다. 구체적으로 주말에 있었던 일을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쓰기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기다림과 칭찬은 어느덧 자신감이 되었고 곧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2020년을 배웅하고 2021년을 마중하며 또 다른 줄리안과 알렉산더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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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