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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9.24 14:52:55
  • 최종수정2023.09.24 14:52:55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부추꽃이다. 초록에 보석처럼 박힌 부추꽃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잠시 빗줄기가 가늘어져서 물방울이 맺힌 자연을 보는 일은 경이로운 일이라 하겠다. 요즘 아침 출근길 재미가 쏠쏠하다.

학교 공사로 2학기부터 학교 안에 자동차 주차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 근처 아파트 몇 곳을 지정하여 자동차 주차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동차를 주차하고 학교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신경이 좀 쓰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을 다녀보니 걷는 길에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넓은 차도 신호등을 건너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김밥집을 지나 튀김과 떡볶이를 파는 길거리를 지나는데 아이들의 즐겁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작은 사거리에서 학교 담장을 따라 걸으니 왼쪽으로 주택가의 계단 화분에 잘 자란 화초들이 시선을 끌었다. 가끔 개 짖는 소리 또한 정겨웠다. 그렇게 학교 후문으로 들어서면 운동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잘 가꿔진 정원을 따라 걷게 된다.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지며 바통을 이어받는다. 학교 공사로 인해 이 값진 길을 날마다 오갈 수 있으니 행운을 얻은 셈이다.

함박꽃이 피었던 자리가 생각났다. 오월 햇빛의 색감, 강도와 방향, 꽃의 빛깔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름 장맛비 같은 가을비가 연이어 내리는 날에도 나는 이 길을 지날 때는 오월의 함박꽃과 그 향기를 느꼈다. 정원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걷는 아침에 남보랏빛 나팔꽃이 넝쿨을 따라 담장을 기어오르다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무 아래 낮은 곳에서 피기 시작한 부추꽃을 발견하게 되었다. 길쭉한 초록 이파리 사이로 요술봉을 내밀어 꽃잎을 터뜨리는 부추꽃을 마주하니 반가웠다. 여러 컷의 사진을 찍으며 어릴 적 장독대 주변에 자라던 부추를 떠올렸다.

늘 바쁘던 어머니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며 바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게 바쁘던 어머니가 비가 내리는 날에는 장독대 옆에 자라던 부추를 베어 부추전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날 어머니가 들에 나가지 않고 곁에서 간식을 준비해 주는 날이 나는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언제나 논과 밭으로 뛰어다니던 어머니의 바쁜 일상이 잠시 멈추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게 바쁘게 들로 산으로 날다시피 뛰어다니던 어머니가 장독을 바라보며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다리에 힘이 없다며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면서 겨우 집 한 바퀴를 돌고 앉을 자리를 찾는다. 장독대 옆 울타리에는 해마다 봄이면 함박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분홍색 꽃이 얼마나 복스럽고 탐스러운지 어머니가 꽃을 볼 때마다 장독대가 환하고 뒤란이 환하다고 감탄을 했다. 그러다가 함박꽃이 지고 나면 장미가 넝쿨을 뻗어 올라가 붉은 꽃을 보여주었다. 장미는 넝쿨손을 뻗어 편백나무를 따라 올라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거동이 불편하여 거실이나 마루에서 밖을 내다보는 어머니를 위해 꽃들이 번갈아 순서대로 피었다. 장미가 지고 더운 여름이 오면서 울타리 끝에 있던 키 큰 배롱나무가 분홍빛 꽃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하면서 여름 내내 울타리가 분홍빛으로 다시 물들기 시작했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자칫 더위에 지치고 힘겨운 시간에 손을 잡아주었다.

부추꽃에 달린 빗방울이 반짝거린다. 사진을 찍고 교실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데, 옆에 섰던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피라칸타였다. 며칠 사이에 피라칸타 열매가 더 붉어진 것이다. 나뭇가지에 열린 열매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달렸다.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자연 앞에 늘 고마운 마음이다. 출근길에 만나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있어 오늘도 감사하다.

오늘 오후에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 부추꽃 만난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리고 추석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장독대를 바라보며 넉넉한 시간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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