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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교실이 조용해졌다. 방금까지도 자기 자리에서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시끌벅적 재잘대던 녀석들이 모여들었다. 머리를 맞대고 엉덩이는 치켜세우고 온통 한곳에 집중한다. 받아쓰기 공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번호에 맞춰 채점을 하는 선생님의 손을 따라가다가 모두 동그라미가 나오면 이어서 "우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다음 사람 받아쓰기 공책으로 다시 숨죽이며 고개를 조아린다. 그렇게 집중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 한국어 교실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 생활한다. 국적은 물론이고 취미와 재능 또한 가지가지다.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꿈인 녀석이 있는가 하면 늘 에너지가 넘쳐서 운동이나 게임 등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목소리가 큰 녀석도 있다, 또한 그림이면 그림, 춤이면 춤 다재다능해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녀석이 있으며, 바퀴벌레를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를 잘하는 반면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글과 표정으로 소통해야 하는 녀석 등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친구들이 모이다 보니 한국어 학습 수준 또한 들쭉날쭉하다.

하지만 받아쓰기 시간만큼은 우리 친구들이 하나로 똘똘 뭉친다. 그도 그럴 것이 통상적인 받아쓰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각자 점수를 잘 받으면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준이 다 다른 상황에서 그렇게 스티커를 주는 것이 마뜩하지 않아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이다.

나는 평소 스페셜올림픽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바로 그 스페셜올림픽에서는 메달권 밖의 선수들이 모두 리본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참여하여 열정을 다한 선수들 모두 순위에 관계 없이 값진 리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게 보였다. 그래서 그 좋은 점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모두 함께한다는 의미로 느끼며 배우고 나누도록 하고 싶었다. 점수에 따라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닌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쓰기에 원칙을 세웠다. 먼저 받아쓰기 전에 받아쓰기 할 부분을 다양한 방법과 경험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학습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흥미롭게 진행하다가 저절로 익히게 되면서 쓰기 단계에서 쓸 수 있을 정도에 이르면 받아쓰기를 한다. 결과는 모든 학생들이 맞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모두 맞힐 경우에는 일제히 스티커를 두 장씩 붙여준다. 한 명이라도 오류가 나오면 모두 스티커를 한 장씩만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받아쓰기 규칙을 세워놓은 후 우리 친구들이 똘똘 뭉쳐서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 흥미를 잃거나 집중시간이 짧아 학습 능력이 좀 부족한 녀석들도 오히려 받아쓰기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지난 6월 25일 '2023 베를린 스페셜올림픽 세계하계대회'가 막을 내렸다. 스페셜올림픽은 경쟁보다 도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일컫는 발달장애인 스포츠 축제다, 190개국에서 약 7천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을 했으며 한국 선수단은 12개 종목에 150명의 선수단이 참석을 했다. 이 올림픽에서는 경쟁보다 화합과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의미로 국가별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스페셜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이 곧 도전이며 격려와 응원을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스페셜올림픽의 정신은 어쩌면 1등을 원하는 경쟁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지구촌에서 획일화된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오늘도 한국어 교실에는 다양한 국적의 아름다운 무지개가 뜬다. 다시 한국어 교실이 조용해진다. 받아쓰기 공책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젠 번호를 따라 문장을 함께 읽으며 서로 확인을 해나간다. 그러다가 마지막 번호를 읽을 때는 조심스러워졌다가 결과를 보곤 환호성을 지르며 두 팔을 높이 들어 흔들며 축제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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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