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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우체국 앞에서 제자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종종 만난다. 만날 때마다 학교 안에 있는 농협이나 우체국 또는 도서관 앞에서 만나기로 정하곤 한다. 오늘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녀는 무슬림으로 늘 히잡을 쓰고 생활한다. 그래서 할랄(HALAL)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갔다. 특별히 오늘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만남의 시간이다.

그녀는 유학생이다. 북아프리카 수단에서 온 그녀는 성격이 밝고 무척 쾌활하다. 마주하고 있으면 상대방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그녀가 올봄에는 좀 힘겨운 시간을 마주했다. 그녀의 고향인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내전이 있었고, 그곳에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연구실에서 종일 실험을 하며 마주하는 공부만으로도 버거운데, 고향의 어둡고 무거운 소식에 밤잠도 설친다고 했다. 그런 제자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고 싶었다.

늘 밝고 명랑한 그녀는 여전히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왔다. 고향 가족들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다행히 가족들이 무사하게 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우리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학교 정원을 걸어서 식당으로 향했다. 소나무의 멋진 자태와 꽃이 지고 이파리가 무성해진 이팝나무를 지나고 은행나무를 지나 잔디 광장을 걸었다. 토끼풀꽃 향기가 기분 좋은 바람에 실려왔다. 쥐똥나무 울타리에서도 꽃향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꽃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부겐베리아라고 했다. 수단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꽃이란다. 나도 부겐베리아꽃을 좋아한다고 하자 그녀의 얼굴이 꽃이 되었다. 식당까지 한참을 걸었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한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오늘 제자가 추천한 식당은 첫 방문이라 좀 설렜다.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음식인 케밥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케밥을 먹고 있는 나를 식당에 온 손님들이 몇 번씩 돌아보며 미소를 보내곤 했다. 같이 음식을 먹던 제자도 '선생님,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확인하듯이 물어보기도 했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덩달아 양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내가 먼저 제자에게 모스크(mosque)에 들르자고 했다. 그녀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우리는 다시 걸어서 모스크를 향했다. 그녀는 모스크에서 기도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아랍어를 가르치는 곳을 보고 모스크도 둘러보았다. 모스크에 온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이집트에서 온 부부가 있었는데, 제자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며 더 살갑게 반겨주었다. 그리고 이집트 음식을 만들어 초대하고 싶다면서 좋아하는 이집트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서슴없이 '우유밥'이라고 답했다. 깜짝 놀라 우유밥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며 다음 주에 이집트 음식을 같이 먹자고 했다. 약속을 정하고 모스크를 나와 제자하고 학교를 걸었다. 자연스럽게 문화 체험을 하게 된 셈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는 제자의 가방에서 도시락 소리가 났다. 도시락 소리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내가 도시락 소리가 난다고 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을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자 그녀가 놀라며 반가워했다. 그녀는 수단 음식을 요리해서 도시락을 준비해 점심을 먹거나 아니면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라면을 자주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는 말도 했다. 이야기하며 걷는 동안 그녀의 집 근처에 다다랐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제자가 집에 도착해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생님 덕분에 스트레스 없는 시간을 보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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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