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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겨울의 끝자락 어느 날, 기분 좋은 뉴스를 접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알렉산더 캠파냐씨 부부에 관한 사연이다. 폭설에 갇힌 한국인 관광객들을 구해준 부부로, 흔쾌히 자신의 집에서 대피해 묵을 수 있도록 해줬단다. 평소 한식 애호가였던 알렉산더 캠파냐 씨 부부와 한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음식을 즐기면서 2박 3일을 지냈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부부를 한국에 초청하기로 했고 다가오는 5월에 일주일간 한국을 여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 일정 중 뉴욕에서 폭설에 갇혔던 관광객 9명을 만나게 될 것이며, 다양한 문화 체험도 하게 된단다. 관광공사 뉴욕지사장은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는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입춘이 지나자 춥던 날씨가 꺾였다. 낮의 길이가 길어졌고 햇빛의 느낌과 빛깔도 달라졌다. 겨우내 잦은 입원으로 걷는 것조차 힘겨웠던 어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연습을 하신다. 요즘 온화해진 햇볕을 쪼이며 잠깐잠깐 마루에 나가 앉았다가, 걷다가 하시며 기력이 좋아지셨다. 겨우내 이웃집에 마실 한번을 못 가셨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입춘을 앞두고 이웃집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봄의 힘으로 다녀오신 것이다. 입춘의 절기가 어머니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24절기를 중요하게 여기며 평생 농사를 지으신 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절기를 기억하며 절기마다 그에 걸맞은 문화를 이야기하신다. 이번 입춘에도 이웃집에 나눠줄 입춘방을 준비하여 지팡이를 짚고 큰맘 먹고 마실을 다녀오신 것이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서 걷다가 쉬다가 하시며 힘겹게 다녀오셨지만 표정은 밝고 행복해 보여 가족들도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정월 대보름에도 가족들이 모였다. 어머니가 늘 설보다 정월 대보름이 더 큰 명절이라고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정월 대보름에는 꼭 전통시장엘 간다. 이번에도 전통시장에 가서 묵나물을 사고 잡곡도 사고 부럼깨물기를 위한 땅콩과 호두도 샀다. 시장에 사람들이 붐벼 한참을 기다렸다가 물건을 샀지만 활기찬 시장 분위기와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느껴져서 힘이 났다. 이 맛에 시장엘 가는 모양이다.

다래순을 들기름과 양념에 무치고, 뽕잎과 아주까리잎도 갖은 양념에 무쳤다. 고사리나물도 들기름을 넣어 볶아냈다. 식탁에 오른 나물 반찬들이 온통 갈색이다. 오곡밥도 풍성한 잡곡이 섞여 먹음직스러웠다. 어머니가 건강하셨다면 손수 다양한 나물과 떡, 오곡밥을 준비하셨겠지만 이번에는 자식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정월 대보름을 맞이했다. 예전부터 정월 대보름 전날에는 저녁을 일찍 먹는다고 해서 늘 그 풍습을 따랐다. 이번에도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는 나물을 드시면서 출석을 부르듯이 나물 이름을 호명하며 맛있게 드셨다. 고사리가 부드러워서 좋다고 하시고, 다래순은 우리 뒷동산에도 많이 있는데, 올해는 다래순을 딸 수 있을까 말끝을 흐리기도 하셨다. 아주까리잎은 보기 힘들어졌다고 하며 아주까리잎을 다 사왔느냐고 반가워하시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 풍습을 이야기하시면서 시래깃국을 끓여서 먹자고 하셨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부럼을 깨물어야 한다고 해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땅콩과 호두를 까서 먹었다. 자꾸만 손이 간다며 가족들이 연신 땅콩과 호두를 먹자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시래깃국에 오곡밥, 묵나물이 차려진 식탁을 보고 뭐니뭐니 해도 시래깃국이 최고라며 맛있게 드셨다.

늘 우리 곁에는 봄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멀지만 매체를 통하여 가까워진 알렉산더 캠파냐씨와 같은 따뜻한 이웃이 있고, 가족은 물론 더불어 사는 주변 이웃들이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그 덕에 변함없이 따뜻한 봄이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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