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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평소 오월이라면 가정의 달이자 다양한 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져 조금은 분주하고 들뜬 분위기였겠지만 올해 오월은 다소 절제된 모습이다.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들만 묵묵히 제 역할들을 해내고 있다. 한껏 부풀었던 벚꽃 행렬이 지나고, 진달래, 개나리에 이어 보랏빛 박태기나무꽃도 지나간다. 이젠 수국이 필 차례다. 내려다보이는 정원에 어른 주먹 크기의 수국이 꽃잎을 부풀리는 중이다.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가. 마스크로 만든 사람들과의 경계와 지켜야 할 거리로 움츠러들었던 생활이 차츰 익숙한 일상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아직은 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되니 균형 잃은 생활의 조각들이 삐걱거리기도 한다. 학생들이 주인인 학교가 텅 비었다.

꽃다지꽃을 들고 와서 내밀던 러시아에서 온 아이, 알록달록 풀잎을 들고 와서 그림도 같이 그려주던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이, 꽃을 따면 안 된다며 시들어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 오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이 등등 온라인수업 화면으로만 만날 수 있는 제자들이 보고 싶다. 재잘대는 녀석들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서서히 개학 시기가 거론되고 있으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도시를 벗어나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도 바빴다. 다소 코로나 상황이 잦아들고 있어 우리는 통화를 하다가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며 만남을 약속했다.

중학교 동창인 친구는 집에서 텃밭을 일궈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 가꾼다. 손끝이 야무져 살림 솜씨가 좋고 무엇이든 겁내지 않으며 잘한다. 우리는 만날 장소를 정할 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먼저 생각했다. 되도록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 변두리 식당으로 정했다. 그리고 점심식사 시간이 지난 늦은 시간대에 만나기로 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식당에서 여유롭게 만난 우리는 그간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느라 꽤 오랜만에 수다를 즐겼다. 어쩌면 보통의 일상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며 즐겼던 생활이었는데,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별것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소중한 경험은 아니었는지 새로운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친구는 양손에 묵직한 짐을 가득 들고 왔다. 여러 가지 찬을 바리바리 싸 가지고 온 것이다. 크고 작은 통에 갖가지 찬이 담겼고, 쏟아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비닐봉지로 싼 것을 보고 여전한 친구의 빈틈없는 솜씨에 감동 받았다.

내가 워낙 묵은지를 좋아해서 친구는 큰 통에는 김장 김치와 갓 담근 열무김치를 따로 담았다. 두릅초절임, 오이장아찌, 여주장아찌, 오가피나물 무침, 엄나무순 무침, 고추냉이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찬들을 준비해 온 것이다. 직접 심고 가꿔서 만든 정성이 가득한 것들이었다. 순간 나는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아주 행복한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봄을 송두리째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봄 선물로 받은 정성 가득한 귀한 찬들을 냉장고에 넣으니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어느 누고도 부럽지 않았다. 두고두고 봄나물에서 친구의 향기가 느껴질 것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온 후배로부터 민들레 나물을 선물 받은 일이 있다. 선후배 사이인 우리는 자주 만나는 편이다. 근래에는 주로 마스크를 하고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학교 운동장에서 걷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서 살게 된 후배는 주말에는 가족 나들이를 하곤 한단다. 가까운 산이나 공원을 찾는데, 얼마 전에는 나물을 뜯으러 갔었다며 내 몫으로 민들레 나물을 가져다 준 것이다. 씁쓰레한 민들레 향기를 맡자 코를 통해 들어간 민들레 향기가 온 몸을 돌아 머리까지 맑게 해 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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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선물의 여운이 마음속에 옹달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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