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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늦가을의 햇볕이 온화했다. 그리 춥지 않아 어깨를 활짝 펴고 다녔다.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곧 추워지겠지 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그렇게 온화하더니 잿빛 가을이 됐고 어느 날은 종일 햇볕의 기운을 받지 못한 날도 있었다. 햇볕 구경을 할 수 없는 날에는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요즘 그런 날이 계절의 징검다리처럼 이어졌다.

 햇빛을 기다리는 그림동화 속 프레드릭처럼 책 한 권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카롤린 필립스의 '커피우유와 소보로빵'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바로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을 만났다. 이어서 나의 제자들을 떠올릴 수 있는 귀한 시간과 마주하게 됐다.

 책 속의 커피우유는 곱슬머리 샘의 별명이다. 피부색이 갈색이어서 붙여진 것이며, 소보로빵은 얼굴에 주근깨가 많아서 붙여진 보리스의 별명이다. 계속 부딪치는 샘과 보리스 사이에서 소냐가 시원하고 칼칼한 양념 역할을 잘 해주곤 해서 다행이었다. 내가 샘을 열렬히 응원한 이유는 현재 내가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제자들과 샘의 환경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샘을 만나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제자들이 떠올랐으며, 가봉이나 에티오피아, 파키스탄이나 네팔,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서 온 제자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샘의 어머니는 난민 수용소에서 6년을 살았으며 고향은 에리트레아이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며 자기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르던 그는 난민 수용소에서 글을 배웠다. 거기다가 샘의 부모는 난민 수용소에서 알게 됐으며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그 후 적십자를 통해 독일에서 살게 됐다.

 독일에서 샘 어머니는 간호사 직업 교육을 받았으며 아버지는 간병인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일자리를 잡지 못한 샘의 아버지는 다시 전철 운전자 교육을 받고 전철을 운전하게 된다.

 샘의 부모는 늘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많다는 것을 수시로 경험한다. 하지만 확고한 한 가지가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샘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아이들처럼 올바른 교육을 받게 하고 배불리 먹고 학교에도 가며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삶에는 정해진 해답이 없듯이 언젠가는 독일보다 아프리카가 샘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독일에서 태어난 샘은, 부모와 달리 독일 에센이 고향인 샘은 순조롭지 못한 학교생활을 하며 특히 보리스와 좌충우돌 크고 작은 문제에 휩쓸리곤 한다.

 샘은 부모의 든든한 가르침에 따라 언어는 물론 피아노 치는 실력 또한 뛰어나서 보리스와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며 결국 서로 하모니를 이뤄 멋진 음악 경연 대회 준비를 하면서 든든한 친구가 된다. 이어서 샘과 보리스가 피아노 연주를 잘했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며 수상까지 하게 된다. 샘과 보리스 그리고 행복한 잔소리꾼 소냐는 서로를 위해 응원해 주는 친구가 된다.

 한편 아이들 뒤에서 사회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어른들의 일상은 어느 곳에서든 마주하게 되는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자리 문제, 이주민들의 문제 등. 아프리카에서 온 나의 제자 중 하나는 글로벌 가족을 이루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살며 그의 형은 미국에 살고 있다. 그의 다른 가족들은 아프리카 고향을 지키고 있다.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며 빨간색이 잘 어울리는 에티오피아에서 온 제자 또한 밝고 긍정적이었는데, 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 책의 결말에서 만난 샘과 보리스처럼 국적이 다양한 제자들에게 따뜻한 내일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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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