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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갑자기 한국어 교실이 조용해졌다. 대신 손놀림이 바빠졌다.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간간이 "학교 그려도 돼요?", "아파트 그려도 돼요?", "선생님, 병원 그려도 괜찮아요?" 등 질문이 들릴 뿐이다.

한국어 교실에서 이번에 배우는 단원이 '우리가 사는 곳'이다. 한국어 교재에서 비교적 어려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지구본을 놓고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찾아보며 궁금증을 갖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고향을 찾게 하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흥미로운 출발이었지만 우리 고장의 모습과 환경에 대한 낯설고 어려운 어휘가 등장하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며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걱정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교재에는 위치와 자연환경, 인문 환경 등 평소 자주 접하지 않던 어휘가 등장하고 문장도 길며 내용도 길게 구성되어 있다.

한국어 교실 친구들은 한국어 수준에 따라 편성 되었으며, 2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 어울려 한국어 공부를 한다. 한국어 수준도 수준이지만 가끔 전반적으로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이 이해도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일 때가 있다. 우리는 그럴 때 서로 팀을 이루어 도와가며 함께 배운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서둘러야 할 때도 있고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일이 자연스레 이루어져 칭찬할 일도 많다.

이번에는 어려운 단원에 맞닥뜨렸고 함께 지혜를 얻고자 어려운 어휘를 뒤로 하고 먼저 우리 고장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신이 난 아이들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동네와 학교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파트, 학교, 병원, 교회, 나무 등 다양한 그림이 펼쳐졌다. 같은 공간인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지만 저마다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림에 명칭도 쓰게 해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앞에 나와 발표를 하도록 했다. 부끄럽다고 하던 아이들이 흥미를 갖게 되면서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 하려고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림 속 초등학교 이름을 가지고 웃음이 폭발하는 행복한 일이 생긴 것이다.

웃음을 제공한 주인공들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다. 한 아이는 학교 그림에 '붕명초등학교'라고 썼다. 다른 아이는 '봉명초드학교'라고 쓴 것이다.

함께 공부하다보면 서로 틀린 글자를 알려주며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목소리를 높여 알려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틀린 글자를 허공에 써 보이는 친구도 있다. 성격이 좀 급한 친구는 앞으로 달려 나가 칠판에 직접 단어를 써서 보여주기도 한다.

'붕명초등학교'는 그런 방식으로 오류가 해결 되었다.

하지만 '봉명초드학교'의 '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서로 '드'가 아니라 '등'이라고 알려주고, 써 주기도 하지만 처음 '봉명초드학교'라고 쓴 주인공은 막무가내로 자신이 쓴 게 맞다고 우겨댔다. 교실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주인공만 애가 타는 눈치였다. 결국 화를 내며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쓴 게 맞아요. 우리 학교에 이렇게 붙어있어요. 오늘도 봤어요!"

그때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맞아! 나도 봤어."

"그 거는 동그라미가 도망 간 거잖아·"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이응이 떨어져나간 학교간판 이야기를 했다.

모든 의문이 풀린 가운데 한국어 교실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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