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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7.07 15:42:46
  • 최종수정2019.07.07 15:42:46

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여름 언저리에서 비를 기다린다. 남녘엔 장마가 한 차례 지나갔다. 중부지역은 마른장마가 지나가고 무덥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유심히 일기예보를 보며 우산을 챙겨 들고 다녔지만 좀처럼 비가 내리질 않는다.

한국어교실에 나오는 초등학생들도 우산을 들고 왔다가 놓고 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일기예보는 빗나가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은근히 비를 기다리는 눈치다. 우리 한국어교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오늘 왜 비가 안 와요·"

우즈베키스탄이 고향인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들고 온 우산을 챙기며 묻는다.

"엄마가 오늘 비 온다고 말했어요."

벌써 며칠째 일기예보에서 비가 내린다고 했지만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으니, 우산을 가져왔다가 교실에 두고 가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장마에 내 귓바퀴를 맴도는 말이 있다.

'장미, 기분이 너무 아파요!'

얼마 전, 한국어교실에서 날씨에 대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국적이 다양한 우리 친구들에게 사계절은 좀 낯설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3개월씩 나누어 알려주고 사계절 특징을 덧붙여 설명한다. 봄은 3월부터 5월까지이며 날씨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꽃이 많이 피며, 여름은 6월부터 8월까지이며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린다며 계절의 특징을 알려주었다. 가을과 겨울도 기후와 특징을 설명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 자료와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기도 했다.

왜 비가 안 오느냐고 묻는 아이들과, 배웠던 기억을 더듬어 여름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단한 질문을 하면 녀석들은 새들처럼 대답을 곧잘 한다.

"한국의 여름은 무덥고 비가 많이 내려요. 그래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평소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아이가 말을 이어갔다.

"알아요. 그래서 장미잖아요!"

"어· 장미는 꽃인데…."

그러자 베트남에서 온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린다. 하지만 자주 쓰는 익숙한 말이 아니어서 '장마'를 '장미'로 착각한 아이는 자신있게 장미가 맞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칠판에 두 단어를 판서했다. 그리고 '장마' 와 '장미'가 너무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며, 장마가 맞는 말이지만 장미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자신감을 잃게 될까봐.

자신감을 생각하니까, 지난 학기에 만났던 방글라데시에서 온 성인 한국어 학습자가 떠올랐다. 그는 한국어가 좀 서툴지만 회사에 다니는 근로자이며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다. 한국어 수업 과정을 마치면 인터넷으로 미리 시험을 신청하고 날짜와 시간에 맞춰 시험을 봐야한다. 그런데, 이 학습자가 시험 신청을 잘 했는지 좀 걱정도 되고 궁금해서 연락을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다 잊어버렸어요, 선생님.'이라는 말이었다. 시험 신청방법을 여러 번 알려주었지만 본인이 신청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속을 끓이고 있던 중에 내가 연락을 한 것이다.

"선생님, 기분이 너무 아파요!"

"네, 마음이 아팠어요·"

그의 음성에서는 반가움과 안도감이 느껴졌으며 또한 서러움 같은 감정도 읽혀졌다. 서둘러 시험 신청을 도와주고 다시 통화를 했다. 밝은 대답이 들려왔다.

'장미, 기분이 너무 아파요!'

내 안에 들어온 말들이 기다리던 비처럼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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