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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3월 어느 날, 퇴근하려는데 운동장에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꽃샘추위가 온다더니 벌써 시작됐나 보다. 차로 걸어가다 뒤돌아서서 학교 숲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때 이르게 돋아난 새싹들이 내일까지 잘 버텨주려나!

밤사이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고 눈비가 오락가락했다. 걱정스러워 다음 날 출근하면서 바로 학교 숲으로 달려갔다. 탐스럽게 돋아난 원추리 잎들이 알알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슬방울이면 좋으련만 영롱하게 빛나는 것은 작은 얼음 알갱이들이었다. 이파리가 다칠세라 작은 붓으로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떨어주었다. 지난 가을 구근을 캐서 보관하려고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았던 튤립들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겹겹이 포개진 넓은 잎들 사이에 물이 고여 아예 속에까지 얼음이 박혀 있었다. 냉해를 입을까봐 뾰족한 나뭇가지를 찾아 하나하나 빼내어 주었다.

가방도 내팽개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2층에서 교감선생님이 소리쳐 부른다. "교장선생님, 추워요 어서 들어오세요. 꽃들도 스스로 이겨내게 해야 해요." 맞는 말이다. 사람들도 어려움을 맞닥뜨리고 이겨내는 작은 경험들을 해봐야 큰 어려움 앞에서 의연히 버텨낼 수 있듯이 새싹도 그렇게 이겨내야 한다. 아이들도 꽃들도 너무 감싸고 과잉보호 하면 작은 고난과 역경에 쉽게 좌절할지도 모른다. 굳이 변명하자면 흙을 뚫고 나와 처음 맞는 꽃샘추위가 얼음까지 꽁꽁 얼게 하는 아주 매서운 놈이라 그 생채기가 너무 클까봐 잠시 과잉보호 했다고나 할까! 경험도 준비도 없이 처음부터 큰일을 겪게 되면 쓰러져 일어나기 힘들잖아. 그럴 땐 어른이, 선배가, 먼저 경험한 사람이 잠시 손 내밀어 도와줘도 되지 않을까· 2층을 향해 대답했다. "네~~, 이번만 도와줄게요."

우리는 2년 전에 학교 숲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숲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뜰에 가깝다. 곡선미를 살린 길, 적당한 높낮이, 본래 있던 단풍나무, 목련, 소나무 등과 새로 심은 나무들의 어우러짐이 멋스럽다. 교목, 관목을 적절하게 심었고 원추리꽃, 송엽국, 달맞이꽃, 구절초 등 철마다 예쁜 꽃이 올망졸망하게 핀다. 건물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 등하굣길에 숲의 변화를 날마다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작년부터 생태환경 연구학교와 초록학교를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숲 관찰 프로젝트 학습 결과물인 학교 숲 지도를 보면서 학생들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표현했는지 감탄 또 감탄하기도 했다.

컨설팅을 해주시는 전문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우리들의 숲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년 봄부터 초겨울까지 우리는 풀과의 전쟁을 치렀다. 풀은 파노라마 같았다. 한 가지 풀을 정복하면 금방 또 다른 종류의 풀이 돋아나 숲을 뒤덮었다. 씀바귀와 꽃다지, 바랭이, 비단풀 등 종류도 다양했다. 수요일엔 다 모여 수다 떨며 숲을 관찰하고 지켜주고 즐기는 수다데이를 운영했고 아이들은 자기 꽃과 나무를 정해 정성껏 보살폈다. 여름에는 긴 가뭄에 스프링클러를 날마다 돌려도 목말라하는 꽃과 나무들을 지키느라 치열한 나날을 보냈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운 가을 숲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숲을 지켜냈다.

다시 3월이 왔다. 언 땅이 녹기도 전에 풀들이 부지런을 떨며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원추리도 튤립도 매발톱꽃도 수선화도 싹을 틔웠고 또 한 번의 꽃샘추위도 기특하게 버텨냈다.

모자 하나 눌러쓰고 장화 신고 호미 들고 학교 숲으로 나가볼까나. 이제 다시 풀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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