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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강남이 물에 잠겼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의 길거리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상점과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기고 길 가던 사람이 쓰러지고 맨홀에 빠져 실종되기도 했다. 이재민들이 망연자실 한탄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물은 늘 무서웠다.

젊었을 때 금관분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장맛비가 쏟아지자 아이들이 창문 밖 운동장을 내다보며 곧 물이 차오르겠네 라고 했다. 이 정도 비에 운동장에 물이 고인다고? 잠시 수업을 이어가다가 운동장을 바라보니 벌써 물이 무릎까지 찼다. 뒷산에서부터 흘러들어와 순식간에 불어난 물을 작은 배수구 구멍이 다 배출할 수가 없었던 거다. 혹시나 비가 더 올까 불안에 떨었다. 다행히 비는 그 정도로 그쳤지만, 순식간에 불어나는 물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우리 학교는 괜찮나? 출근길에 교문 앞을 지나가는데 내 자동차 바퀴가 양옆으로 물살을 갈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차를 세우고 비가 쏟아지는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인조 잔디 위로 물이 찰방찰방했고 배수로 위로 물이 넘실거렸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유난히 장화를 많이 신는다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던 거다. 통학로마다 비가 많이 고인 곳을 지나가야 하니 장화를 신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다 있다.

등교하던 학생 한 명이 소리쳤다. "어, 저기 물고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꿈틀꿈틀 기어 다니다가 배수구 속으로 쑥 들어갔다. 헉, 학교 운동장에 물고기가 헤엄친다고? 배수구가 차니 운동장에 물고기도 나온다.

배수구마다 들여다보며 돌아다니는데 행정실장이 합류했다. 교문 앞 큰 배수구는 물이 잘 빠지고 있는데 왜 그럴까? 학교에서 나오는 배수관이 막힌 게 아닐까? 교육청 시설팀에 협조를 요청했더니 즉시 와주셨다. 내가 생각했던 곳이 막혔을 것 같다 했다. 오래 근무한 실무사님은 학교의 지대가 낮아서 늘 물이 잘 안 빠졌다고 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종일 불안했다. 오늘따라 시설주무관님은 연가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비가 그친 후에 퇴근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계속 보은 날씨를 검색했다.

다음날 일찍 출근해서 또 배수구들을 살피고 있는데 시설팀장이 다시 방문했다. 막혔을 것 같은 곳을 뚫어보고 싶어서 출근길에 다시 오셨다고 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시설주무관님이 긴 관을 가져오셨다. 학교 앞 배수구 뚜껑을 열고 내려가 배수관을 쑥쑥 쑤셔보았다. 별 반응이 없더니 팔을 끝까지 뻗어 밀어 넣는 순간 갑자기 물이 쏟아졌다. 화분같이 생긴 시커먼 것이 휘돌아 큰 배수구로 빨려 내려갔다.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물의 유속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 뚫렸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운동장의 물은 워낙 넓은 곳이니 금방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줄어들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멈추기를 반복하는데도 교문에 물이 고이지 않았고 운동장 배수로도 차오르지 않았다. 몇 년간 비가 오기만 하면 고였다는데 저렇게 잘 빠질 수가 있는가 말이다. 행정실장과 나는 몇 번이나 운동장 한 번 보고 서로 얼굴 한 번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온종일 웃음이 나오네." 하니 행정실장은 "교장 선생님, 기분이 정말 좋아요." 했다. 10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나도 행정실장도 아무것도 몰랐지만 계속 살펴보니 상황이 보였다. 확신이 없을 땐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내 일처럼 달려와 준 전문가 시설팀장님과 하수구에 들어가 온몸으로 뚫어준 주무관님 덕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난다 해도 걱정 없이 잘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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