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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설악산 공룡능선을 다녀왔다. 총거리 21㎞의 긴 산행이었다. 소공원~비선대~금강굴~마등령삼거리~공룡능선~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 원점회귀 코스였다. 지금 나는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한껏 들떠있다.

D-day, 등산배낭에서 평소에 들고 다니던 물건들을 다 꺼냈다. 긴 산행인 만큼 두 끼 도시락과 간식, 물을 넣으려면 최대한 가볍게 해야 했다. 등산의자, 물컵, 화장품 등등 다 빼고 무릎보호대, 화장지, 비닐봉지만 넣었다. 지금 생각하니 빼놓은 물건이 등산 내내 한 번도 필요하지 않았다. 매번 무겁게 들고 다녔는데 말이다.

출발 전에 충분히 자려고 했지만 긴장해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1시간 30분 남짓 자고 자정에 출발했다. 새벽 3시,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 밤에 주차요원과 입장료를 받는 직원도 있었고 일찍 도착해서 이미 산행을 떠난 차도 몇 대 있었다.

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비선대를 향해 출발했다. 비 예보도 없었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비가 오락가락했다. 위험한 빗길도 걱정이지만 멋진 풍경을 가릴까 더 염려됐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금강굴까지 돌계단을 오르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난이도 최상코스 오르막을 한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숨이 차고 목이 말랐으며 가파른 계단에 발을 헛디딜까 불안했고 힘들었다.

급기야 어지러워 주저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내려갈까 고민하는데 옆에 서 있던 남편이 말없이 물병을 건넸다. 무언의 격려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가자! 다시 일어났다. 입을 꽉 다물고 한 걸음 더 높이 한 걸음 더 멀리 걷고 또 걸었다.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흐릿하게나마 돌계단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아래만 보며 걷는데 뒤따라오던 남편이 팔을 뻗어 위를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보니 집채같이 크고 멋진 하얀 바위가 떡 하니 바로 앞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있어도 어둠이 가리고 있으면 볼 수 없고 고개를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뒤 한 번 돌아봐!" 겨우 몸을 지탱하고 뒤돌아서니 아직 어둠이 감싸고 있는 설악산 능선이 굽이굽이 거기에 있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앞이 보이기 시작하니 걷는 길이 훨씬 쉬웠다. 마등령삼거리까지 7.2km 구간을 지나니 본격적인 공룡능선이 나타났다. 운무에 가려졌던 봉우리들이 보일 듯 말 듯 나타났다 숨었다를 반복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고 경이로웠으며 멋졌다. 나한봉, 큰새봉, 1275봉, 신선대 등 뾰족한 공룡의 등을 타고 오르내리며 맘껏 설악을 즐겼다. 바람이 훅~ 운무를 걷어주기를 한참을 기다리기도 하고 독특한 바위에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범접할 수 없는 듯 거칠면서도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설악의 매력 속에 흠뻑 취했다. 왜 사람들이 설악산을 최고라고 하는지 걷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비는 높은 산 바위에 물길을 내어 땀에 젖은 얼굴을 씻을 수 있게 해주었다. 능선을 가리던 얄미운 구름은 걷는 내내 해를 가려주어 덜 지치게 해줬으니 나쁜 일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천불동계곡 하산길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시원한 폭포와 하나씩 펼쳐 보여주는 비경에 넋을 잃곤 했다. 걷고 또 걸어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길은 저녁 7시 30분 장장 16시간 만에 끝났다.

교장실 액자 안의 공룡능선은 범봉이었다. 그 풍경 안에 있는 나를 상상했는데 공룡능선은 아예 나를 따라와 눈을 감을 때마다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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