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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20년 전 대학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미술의 특징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수업하던 날이었다. 담당교수님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거라며 직접 겪은 일을 사례로 들었다.

한 학생이 졸업 후에도 교수님의 작업실에서 도예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퇴근 후 저녁마다 학교에 나와서 작업을 하겠다니 기특해서 허락했다. 제자는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 만드는 일에 푹 빠졌고 참 열심이었다. 교수님도 한 작품씩 완성해가는 제자를 보며 보람을 느꼈다. 재학생들은 저녁이면 미팅이다 동아리다 얼굴 보기도 힘든데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그 친구가 대견했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 방법은 어떨까, 이 유약을 써 봐라 하며 도구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작품들이 쌓여 드디어 가마에 넣는 날이 되었다. 어떤 작품으로 변신할까 궁금해하며 교수님도 제자와 함께 며칠 동안 불 옆에서 떠나지 않았다. 도자기는 유약, 불의 온도와 연기에 따라 표면의 색이나 무늬가 확 달라지므로 어떻게 완성될지 설레기까지 했다.

도자기 가마의 열을 식히는 기간에 교수님은 장거리 출장을 가게 됐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작업실로 바로 달려갔다. 작품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서 말이다. 그런데 가마는 텅 비어 있었고 주위를 둘러봐도 제자의 작품은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제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로 이렇게 말했단다.

"왜요? 교수님. 제 껀 제가 다 가져왔는데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루도 못 기다리고 싹 가져가냐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정작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으셨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 그래요. 다원주의잖아요. 자기 작품이니까 챙겨서 가져간 겁니다. 틀린 것은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각자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뭐 그리 속상하진 않아요."

맞다. 잘못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교수님의 말에 허탈함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세월이 흘렀다. X세대, Y세대, Z세대 운운하더니 지금은 MZ세대란다. 한 세대가 30년이라는 말은 옛말이 됐다. 세대 간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저히 서로를 알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 학교는 작년부터 세대공감 연구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부모님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시간여행을 하듯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을 집으로 보내 함께 읽고 이야기도 나눴다. 옛날 간식과 놀이, 지금 아이들의 말과 놀이를 배워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다모임 시간에는 달고나, 딱지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오징어게임으로 세상이 떠들썩하기 바로 전이었다.

가장 감동적이고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자서전을 만들어 드립니다' 활동이었다. 전교생이 개별로 부모님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2학년 현이는 할머니의 인생이야기를 서툰 솜씨로 담았다. 인쇄된 책을 받아들고 현이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평생 최고의 선물이라 하셨단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

20년 전, 교수님이 제자에게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니 꼭 보여주면 좋겠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도 서운함은 남는 법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도 기성세대와 MZ세대 간에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려면 마음을 표현하고 알아가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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