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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8.04 16:46:45
  • 최종수정2021.08.04 16:46:45

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산행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남들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잘도 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둘 다 힘들다. 오르막은 숨이 차고 다리가 천근만근이고 내리막은 미끄러질까봐 더디 걸어 매번 꼴찌다. 남편은 느릿느릿 겨우 오르는 나를 보고 나무늘보 같다고 놀리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악산 같이 난이도가 높은 산은 엄두를 못 냈다.

교장실에는 2개의 산사진이 걸려있다. 하나는 뉴질랜드의 최고봉 마운틴 쿡 설경이고 다른 하나는 넘실거리는 운해에 불쑥 솟아 있는 설악산 공룡능선이다. 마운틴 쿡은 먼 이국땅인데도 호수 너머 멀리서 바라보는 산이라 몇 해 전 다녀왔다. 공룡능선은 최소 15시간 이상 산행을 견딜 수 있어야 볼 수 있는 풍경이라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초여름, 남편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도전해보라고 제안했다.

"나무늘보처럼 느린 사람이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하니 그것보다는 좀 더 빠르단다.

용기를 냈다. 8월 중순에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기로 했다. 결심을 한 이상 준비를 해야지. 다음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5층까지 계단 오르기를 3번씩 하고 출근했다. 저녁엔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 성큼성큼 빠르게 걷기 연습을 했다.

2주 전, 한 달간 연습한 실력을 점검해보러 낙영산으로 갔다. 낙영산은 공림사에서 출발해서 완만하게 오르다가 누구나 힘들게 오른다는 급경사 할딱고개 구간이 있다. 이번엔 그 곳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다.

시작점에서 초·중학생 4명과 엄마, 이모, 할머니가 함께 온 가족산행팀을 만났다. 우리가 출발하자 아이들은 성큼성큼 따라 오더니 한 달간 연습한 나를 무색하게 앞질러 가버렸다.

할딱고개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쉬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몹시 숨차 보였다. 그 옆을 지나 계속 오르는데 아이들이 또 나를 추월했다. 이번에는 나도 알았다. 금방 지쳐있는 아이들을 앞지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얼마가지 못하고 멈춰 서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나무늘보 보다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을 앞질러 할딱고개를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갔다. 그 동안의 연습이 영 헛수고는 아니었나 보다.

이번 주 산행은 가령산이었다. 일찍 산행을 끝내고 화양동 계곡에 풍덩 땀을 씻고 오자며 들떠서 출발했다. 산행친구 부부와 넷이었다. 나는 늘 맨 뒤에 뒤쳐져 걷는데 오늘은 세 번째로 걸었다. 급경사 구간에 접어들자 아니나 다를까 또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멈추어 쉴까말까 고민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산행 고수인 친구는 괜찮겠지 싶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그녀도 몹시 거친 숨소리를 내며 버거운 걸음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쉬지 않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왠지 위안이 됐다. 하산 길에 계곡물 대신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낙비에 땀을 씻어야 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일을 하다보면 나만 힘든 것 같을 때가 많다. 내 어깨의 짐이 더 무겁고 내가 맡은 일이 더 고달파 보인다. 실상은 누구나 다 어렵고 힘든 일을 참고 이겨내고 있는데 말이다. 기운 팔팔한 젊은이는 힘과 호흡이 과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경력 많은 사람은 자만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장시간 산행은 버겁게 느껴져 떨리고 두렵다. 못 견디게 지치고 힘든 순간도 있을 거다. 다만 가쁜 숨을 참고 한 걸음 더 높이 한 걸음 더 멀리 가다보면 사진 속에 있는 저 풍경 안에 내가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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