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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포근한 이불 속에서 잠을 깼다. 푹신한 침대, 부드러운 감촉의 이불,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누워있었다. 한동안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편하다. 버튼을 내리니 쏴아 물 내려가는 소리, 꼬르륵 다시 물 채워지는 소리가 정겹다. 일상이 제대로 작동되는 이 공간이 너무나 편하다.

샤워기를 향해 얼굴을 들고 따뜻한 물을 틀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따끈한 물이 나오고 샤워부스에 살짝 김이 서린다. 샴푸를 하고 컨디셔너를 다 씻을 때까지 온도가 그대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문명 세계로 다시 돌아왔다. 결핍의 시간이 있었기에 이 안락함이 너무나 행복하다.

2주간의 히말라야 등반을 다녀왔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 근처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는 도로부터 문명 밖 세계로의 외출 같았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흙먼지 자욱한 도시 속으로 들어갔다. 공항 근처 오래된 호텔은 197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낡은 가구와 화장실, 잘 열리지도 않는 자물쇠로 낑낑거려야 했다.

출발지 쿠툼상까지 가는 길은 더 오래전 세상으로 가는 것 같았다. 시내에서부터 울퉁불퉁 덜커덩거리기 시작해서 꼬박 6시간 동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을 수가 없었다. 꼬불꼬불 오르기 시작한 산길을 돌아 산 하나를 넘어가서 내려오고 또 하나의 중턱에 올라서야 끝이 났다. 외길에 고장이 난 버스 때문에 무작정 기다려야 했고 그 좁은 길에 마주 오는 트럭을 피하느라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야 했다.

고산지역의 숙소인 롯지라는 곳은 합판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난방도 온수도 없었다. 흐릿한 불빛에 물건을 찾기도 힘들었다. 어떤 곳은 칸막이 사이가 떠서 마음만 먹으면 옆방 사람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가 있었고 높은 곳일수록 더 열악해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곳도 있었다. 먼지 정도는 닦아도 될 텐데 켜켜이 쌓인 먼지에 없던 비염도 생겨 자꾸만 재채기가 나고 콧물이 났다. 쪼그려 앉아야 하는 화장실엔 휴지도 없었고 물도 바가지로 흘려내려야 했는데 그것도 자꾸만 막혀 낭패를 봤다.

하루 10시간 산행 후에도 고산증이 올까 봐 세수도, 머리도 감지 못하고 화장 티슈로 얼굴을 닦고 물티슈로 땀에 절은 몸을 겨우 닦아내야 했다. 카트만두에서 대여한 퀴퀴한 냄새 나는 침낭 속에 뜨거운 물통과 뜨끈한 핫팩을 넣고 잠을 잤다.

나흘 동안 올랐던 길을 종일 내려왔던 날, 그나마 나은 호텔이라 돈까지 내며 따뜻한 물을 쓰기로 했다. 일찍 샤워를 시작한 나는 오랜만에 머리를 감을 수 있었지만 내 룸메이트는 샤워하다가 찬물이 나왔고 또 다른 일행은 아예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단다. 태양열로 데웠던 물은 우리 12명이 미처 다 씻기도 전에 끊겨버렸다.

결핍의 시간에 적응되어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문명 속으로 돌아왔다. 인천공항에서 청주까지 오는 길은 매끈한 비단길 같았고 곱게 물든 단풍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렸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온 감각으로 느꼈다.

내 자리에 돌아와서도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다. 처음 포터 일을 나왔던 21살의 데이비드이다. 30kg이 넘는 짐을 메고 낑낑대며 길을 오르던 작은 어깨, 운동화 위로 피가 고여도 모르고 위험한 구간에서 손을 내밀던 그의 순박한 웃음이 내내 아른거린다. 고산의 롯지에서 학교도 못 가고 하루종일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13살의 안젤라, 먼지 자욱한 산길에서 손을 흔들던 아이들의 모습도 다시 떠오른다. 우리들의 결핍의 시간은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이니 견디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들의 시간은 얼마나 오래 지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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