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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성불산 소나무숲길을 오르는데 마른 고사리 잎들이 보였다. 어라! 여기 고사리가 있겠는데 싶어 이리저리 찾아보았지만 바싹 마른 고사리 덤불만 가득할 뿐 아기고사리는 하나도 없다. 아직 철이 아닌가 보다.

이렇게 봄철 고사리가 날 때쯤 산을 오르면 시골 분교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아이가 생각나곤 한다. 6학년 여덟 명 중에 유난히 농사일을 잘하고 닭 키우기가 취미였던 승희라는 아이다.

승희는 닭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아이였다. 유치원 때부터 병아리를 키우기 시작해서 6학년이 되도록 닭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닭장을 지어주시고 계란을 낳으면 아이 것으로 해주셨단다. 자기 닭장을 가진 아이는 닭 모이도 혼자서 주고 닭장 청소도 알아서 한다고 했다. 승희의 계란은 엄마도 함부로 꺼낼 수 없다고 하시면서도 대견해하셨다.

승희의 닭사랑은 학교에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닭 이야기를 주로 했고 시를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심지어 노래를 만들 때도 닭이 주제였다. 닭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고 구체적이었으며 세밀하게 표현했다. 닭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닭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아이의 표정은 늘 해맑고 행복했다.

시골아이들이니까 닭도 키우고 농사일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때의 부모들도 내 자식만큼은 농촌 뙤약볕에서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커서 도시에 나가 번듯한 직장을 잡기를 바랐던 부모세대들의 가치관은 아이들이 농사일에 관심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농사짓는 방법은커녕 들깨와 참깨를 구분할 수 있는 아이도 드물었다.

승희는 수학 문제 풀기, 과학 이론 이해하기 등에는 관심이 없었고 배우기 힘들어했지만 닭사랑 만큼 산과 들의 곡식과 나무에 대해서도 척척 박사였다. 화단의 꽃 심기, 나무 심기, 텃밭 풀 뽑기, 풀이나 채소 실어 나르기 등을 어른처럼 척척 해냈다. 호미질을 해도 수레를 끌어도 안정적이어서 늘 믿음직스러웠다.

이른 봄날 학급 아이들과 학교 뒷산에 식물을 관찰하러 갔던 날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봄꽃과 새순을 살펴보고 있는데 승희가 밝게 웃으며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선생님, 여기 고사리 있어요!"

무덤가에서 고개를 숙이고 왔다갔다 하더니 고사리를 찾고 있었나보다. 뛰어가 보니 여기저기 고사리가 쏘옥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선생님, 고사리가 엄청 예쁘지요?"

고사리 하나를 들고 바라보고 있는 승희의 표정이 귀한 꽃 한 송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놀림도 빨랐던 승희는 금방 한 손 가득 고사리를 내밀었다. 오동통한 고사리로 만든 고사리 꽃다발이 승희의 마음처럼 예뻤었다.

그날 이후로 난 고사리가 정말 예쁘다. 산길에서 고개 내밀고 쏘옥 쑤욱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제비꽃, 민들레 가득 피어있었던 그 산에서 고사리가 예쁘다고 했던 그 아이 말이다.

서른 즈음이 되었을 승희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그려보곤 한다. 단언컨대 지금도 승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고사리를 예뻐하던 그 눈빛일 것이다. 닭을 사랑하던 그 마음 그대로 일 것이다.

새로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학교숲의 새싹들이 주말 동안 또 얼마나 자랐나 살펴보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학교버스가 들어오고 아이들이 애기사과꽃, 조팝나무꽃 사이로 조르르 달려와 맷돌 디딤석을 밟고 통통 뛰어온다. 저 아이들도 승희처럼 고사리 한 줄기, 닭 한 마리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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