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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 교장

3월의 햇살치고는 제법 따사로운 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멀리 들으며 봄맞이하듯 교정을 걸었다. 터질 듯 말 듯 하던 매화가 하얗게 꽃망울을 터뜨려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교문 옆 돌담길을 걷는데 "버르르 버르르" 작은 소리가 들렸다. 회양목 잔가지 사이에서 나는 소리였다. 벌들이 회양목 자잘한 이파리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웬 벌들이 저렇게나 많이 몰려 있을까? 한참을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꽃들이 보였다. 겨울 언저리에도 연겨자색 잎을 지켜내고 있던 회양목은 남모르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향기도 제법이다. 그윽한 매화 꽃에 눈길을 주느라 회양목이 이렇게 꽃피워 벌들에게 꽃가루를 나눠주고 있는 줄은 몰랐다.

꽃들은 제각기 대를 이어나가기 위해 자신만의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화려한 꽃모양, 아름다운 색깔, 때로는 달콤한 향기를 뿜어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회양목을 눈여겨본 적이 있었던가? 한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아 사계절 원예식물로 각광 받으며 학교, 아파트, 공원 등 어디에나 있는 회양목이고 쓰이는 곳도 많다고 하는데 존재감은 없는 것 같다.

교육자의 상상력의 끝은 늘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학교에도 회양목 같은 아이들이 종종 있다. 학생들 중에는 유난히 능력이 뛰어난 존재감을 뽐내는 아이들이 있다. 학습, 운동, 악기, 노래 등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을 보여 주목을 받는다. 학교는 그런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성장시켜 주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회양목과 같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앞장서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받쳐주고 무리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 말이다. 재작년 졸업한 지현(가명)이가 그랬다.

유난히 밝고 활발한 아이들 속에서 지현이는 움츠린 어깨, 자신없는 걸음걸이, 잘 웃지 않는 멋쩍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성실하고 심성도 착하며 학습능력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했다. 왜 저 아이는 능력에 비해 주목받지 못할까 궁금했다. 선생님들은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이고 수줍음도 많지만 뛰어난 형제들과 비교해 자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든 지현이의 자존감을 끌어 올려주고 싶었다. 담임선생님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아이들의 변화는 칭찬의 작은 말 한 마디로 시작되기도 한다. 책을 좋아하는 지현이에게 다른 아이들 몰래 교장실에 불러 딸들이 읽던 책을 선물했다. 복도에서 만나면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물어보고 웃는 모습이 예쁘다 했다. 지현이 오빠가 하교하는 길목에 서서 기다렸다가 잠시 불러 지현이 놀리는 말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

교사로 살면서 가장 보람된 것은 이렇게 작은 관심만으로도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지현이는 읽고 있는 책 느낌을 얘기해주기도 하고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친근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지현이 웃는 모습이 참 예쁘네!"라고 했을 때 멋쩍은 표정으로 "어? 아닌 것 같은데!" 했던 아이가 얼마 후엔 "웃으며 인사해주니 고마워!" 라는 말에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나무든 꽃이든 사람이든 저마다의 모습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회양목은 그저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꽃을 피워내며 자신의 삶을 살 뿐이다. 지현이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자기의 존재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 알게 되면 더 신나고 행복하게 뿌리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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