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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몇 해 전 친구를 만나러 일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청주에서 일산까지 신나게 달렸다. 3시간 넘게 걸리는 만만찮은 거리였지만 다행히 5월 속의 자연은 지천에 꽃이었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했다.

"저건 무슨 나무지? 저게 무슨 꽃인가? 이팝나무가 벌써 하얗게 꽃을 피웠네. 오랜만에 버드나무를 보네."

가는 길 내내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혼자 묻고 대답하며 종알거렸다. 특별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감탄의 마음을 혼잣말로 표현했을 뿐이다. 5월의 자연이 그렇게 만들었다.

드디어 일산 외곽지역을 들어서는데 이팝나무 가로수 아래 노란 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무를 둘러싸고 동그란 모양을 그린 연노랑 꽃이 잔망스럽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기병아리들이 보송보송 무리 지어 등을 맞대고 있는 것같이 사랑스러웠다. 뭐지? 일부러 심은 꽃인가? 차가 신호등 앞에 잠시 멈췄을 때 자세히 보았다. 풀꽃이었다. 씀바귀꽃이었다.

아이러니하게 그해 봄 내내 내가 한 일이 학교 숲의 어린 씀바귀를 뽑아내는 일이었다. 공들여 심어놓은 꽃들 사이를 비집고 풀로 자라는 씀바귀는 아주 어렸을 때 제거해야 했다. 씀바귀를 뿌리째 뽑기 위해 작은 손가락만 한 잎사귀를 살짝 잡고 주변의 흙을 살~~살~~걷어내듯 뿌리를 따라가 보면 내 팔 길이만큼 길게 뻗어있기도 했다. 뽑는다고 뽑아도 며칠 지나지 않아 바로 그 자리에 더 많은 씀바귀가 군락을 이루는 일이 다반사였다. 꽃이 피기도 전에 홀딱 뽑아버려서 어떤 꽃이 피는 줄도 몰랐었는데 그렇게 무리 지어 예쁘게 피는 꽃이었다. 그 해 보았던 어떤 꽃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다.

올해도 나는 풀과 씨름 중이다. 동광 숲에는 참 많은 풀이 산다. 꽃다지와 냉이가 지천이더니 지금은 씀바귀와 좀씀바귀가 그물망처럼 엮여 있다. 손에도 잡히지 않는 작은 괭이밥이 올라오고 개망초가 여기저기 전봇대처럼 불쑥 솟아 있기도 하다. 미처 뽑지 못한 씀바귀는 구석에서 노랗게 꽃을 피웠다. 개망초가 꽃들 사이에서 커버리면 낭패다. 꽃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캐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크기 전에 서둘러 뽑아내야 한다. 끝도 없는 일이다. 그냥 두면 할미꽃 동산도 씀바귀꽃밭, 패랭이군락도 씀바귀꽃밭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니 다시 손길을 재촉하게 된다.

꽃밭의 꽃을 위해 당장 제거해야 하는 풀로만 보다가도 노랗게 피어 있는 씀바귀꽃과 괭이밥꽃을 보면 손을 멈출 때가 있다. 작고 앙증맞은 노란 꽃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뽑기가 미안해진다. 개망초꽃도 마찬가지다. 노른자 하나 품은 듯 계란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개망초 하얀 꽃은 다정하기도 하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고 정해진 틀 속에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아무도 풀꽃에게 있어야 할 공간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네가 자라고 피어날 공간이 아니니 밉다 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너무나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인데 그것을 다 수용해주지 못하고 규범이 정한 틀 속에 가두고 옳다 그르다 한다.

너른 들에 하얀 개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얼마나 멋질까? 여행객의 발길을 머무르게 할 거다. 노란 괭이밥꽃이 한적한 산책로에 피어 한들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의 들꽃이야기 시로 태어날 수도 있을 거다. 우리는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울 꽃밭을 준비하고 열심히 가꾸면서도 풀꽃 같은 아이들이 자랄 너른 들판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다.

풀꽃을 열심히 뽑아내는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달래본다. 씀바귀꽃 같은 아이들이 어디서든 자기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마음자리를 내어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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