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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 교장

천년고찰 보살사는 낙가산 능선이 절을 품고 있어서 아늑하고, 도시에 가까워 드나들기 편하면서도 마을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서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낸다. 들어가는 입구를 덮고 있는 키 큰 활엽수들은 마치 사천왕상처럼 속세로부터 절을 보호하는 듯해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약숫물을 제공하니 자주 갈 수 밖에 없다.

지난 주말 물 뜨러 갔다가 극락보전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툇마루에 앉았는데 조용히 정적을 깨며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초여름의 햇살에 반짝거리는 초록잎들 사이로 살짝 바람이 불더니 풍경이 화답을 했나보다. "차르르 댕~~~~~" 산사를 휘감는 소리가 마치 바람이 '나 여기있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바람 거울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떠올랐다. 바람이 풍경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존재를 알린다? 이거 재미있는데? "풍경"의 한자어가 바람 풍에 거울 경인가? 갸우뚱거리다가 검색해보니 아니다. 풍경(風磬)에 경은 경쇠 경이다.

엉뚱한 생각에서 돌아오니 남편은 벌써 풍경이 있는 곳으로 가 있었다. 소리가 보통 사찰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과 달리 울림이 깊다 생각했더니 새로운 스타일의 풍경이 커다랗게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도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나는 바람 거울이라는 제법 시적인 표현을 생각해냈는데 남편은 원리 분석을 했다. 센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커다란 풍경이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추에 매달려 있는 넓은 원판이 바람을 받아서 그렇단다. 집에 있는 풍경에도 추에 넓은 판을 달아주면 소리를 내지 않을까 하며 들뜬 모양새다.

우리 집 베란다 앞 창문에는 4개의 풍경이 매달려 있다. 예쁘다고 사다 달며 소리를 기대했는데 울리는 법이 없었다. 23층의 고층 아파트라 바람이 제법 많이 부는 날에도 몸 전체가 흔들리기는 하는데 소리를 내지 못했다.

올 봄,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베란다 쪽에서 "달그랑 달그랑" 소리가 났다. "어, 이거 풍경소리 아냐?" 하며 쳐다보니 한두 번 그렇게 소리를 내고 그 뿐이었다. 태풍 같은 바람이 불어야 겨우 소리를 내는 풍경을 보며 제 역할도 못하는 녀석이다 했다.

남편은 아니었나 보다. 왜 그럴까 궁금해 하더니 여기에서 해답을 찾은 것 같다. 우리 집에 매달려 있는 풍경들이 사실은 현관문에 달아야 하는 도어벨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고 닫을 때의 움직임으로 추를 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바람에 움직이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소리를 낼 턱이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추 아래쪽에 마름모 모양으로 넓게 판을 만들어 달아주었다. 드디어 도어벨들이 풍경이 되어, 가는 바람에도 달그랑 달그랑 제법 청아한 소리를 냈다.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 판을 하나 달아줬을 뿐인데 그 동안 무용지물이라 생각했던 풍경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몇 년을 매달려 있었는데 이제야 소리를 내게 하다니 풍경이 우리한테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풍경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였다. 역할을 할 수 없는 엉뚱한 자리에 갖다놓고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으니 말이다.

바람 거울이라는 시적 상상이든 넓은 판을 달아 바람으로 추가 종을 칠 수 있게 하든 풍경은 소리를 내어야 풍경이다. 소리를 내고 싶은 풍경이 엉뚱한 곳에서 그냥 매달려있기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저 그런가 보다 간과할 일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문제를 찾아 해결해주면 도어벨이 풍경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달그랑 달그랑" 우리 집 풍경들이 소리를 낸다. 듣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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