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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닫혔던 세계로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이제 다시 여행의 시간이 돌아왔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직접 겪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상황에 마주할 때가 많다.

처음 유럽 여행을 갔던 해였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환승하여 제네바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D 터미널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공항은 빈틈없이 채워진 쇼핑센터 같았다. 어디가 게이트인지 어디까지 면세점인지도 모를 만큼 번잡스러웠다. 떠나자마자 만난 이국적인 공간의 생소함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환승 시간이 2시간이 넘게 남았고 겨우 D에서 F까지 가는 길이니 천천히 구경하며 걷는데 아무리 걸어도 E 터미널이 보이지 않았다. 양옆으로 늘어져 있는 면세점은 끝도 없었다. 우리의 발걸음이 아무리 느려도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행들과 그때부터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했다. D와 F 사이는 거리는 쉬지 않고 걸어도 적어도 30분 이상 소요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겨우 E가 보이고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한참을 빠져나가며 뛰고서야 겨우 우리가 타야 하는 F 터미널의 게이트에 도착했다. 겨우 2분이 남았다. 문제는 아직 일행이 다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땀을 닦으며 탑승구 위 전광판을 보니 보딩 타임이 20분 늦춰져 있었다. 덕분에 숨을 돌리고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아찔한 경험이었다. D와 F 사이가 그리 먼 줄은 처음 알았다.

거리 얘기를 시작하니 26년 전 첫 중국 여행이 떠오른다. 중국을 자주 드나들던 셋째 형부가 가이드를 자처하며 인천에서 배로 중국 여행을 가자고 했다. 톈진~베이징~연변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인천 버스 터미널에 정오에 도착했다. 여객선터미널로 이동해서 배표부터 끊자고 하니 오후 5시에 출발하는 톈진 가는 배는 늘 텅텅 비어서 미리 끊을 필요가 없단다. 형부를 믿고 영화까지 보고 터미널로 갔는데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여름방학이라 대학생들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몰려든 것이다. "톈진행 매진"이라는 글자를 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웃음도 안 나왔다. 하루 한 대밖에 없는 배였다. 평소에 한가했다고 매표도 하지 않고 영화를 보자고 한 형부가 원망스러웠지만,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하지 않은 우리도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멍하니 매표소 위를 보니 "웨이하이행" 표가 남아 있었다. 웨이하이는 어디지? 벽에 붙어있는 중국 지도를 찾아보니 지도상으로 톈진과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하루를 기다리느니 웨이하이로 가서 톈진으로 이동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좋은 의견이라며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배를 탔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 도착한 후였다. 웨이하이에서 톈진까지 기차로 19시간 거리였다. 지도에서 한 뼘도 안 되었는데, 19시간이나 걸린다는 사실에 입이 쩍 벌어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껏해야 6시간 걸리는 나라에 살았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륙적 사고라고 하더니 커도 너무 큰 나라였다.

D와 F 사이의 거리도 지도상의 한 뼘의 거리도 직접 걸어보고 직접 뛰어 봐야 체감할 수 있다. 지금은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검색을 하며 모든 것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때론 진땀을 빼고 때론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을 웃으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일은 신기했고 즐거웠으며 행복했다.

생생한 여행의 경험과 다양한 체험은 내 일상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믿는다. 어떤 상황이든 한 번 더 생각하고 좀 더 멀리 보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라고 여행길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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