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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우리 학교는 주택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아침 운동 공간이고 저녁 휴식의 자리이다. 또한 학교를 가로지르는 통행로가 되기도 한다. 학교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교장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유치원 앞 가로등에 아래에 누군가 자꾸 꽃을 꺾어다 놓아요. 마치 산소 앞에 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아 찜찜해요."

어느 날 아침, 행정실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묘소 앞에 꽃다발을 갖다 놓은 것처럼 꽃 무더기를 놓았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놀이로 꽃을 꺾어다 놓은 건 아닌가 싶어 유심히 살펴봤는데 주기적으로 꽃을 바꾸어 놓는다고 했다. 누가 그랬을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 공간에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일과 수업 중에도 몇몇 어르신들이 학교 운동장을 돌며 운동을 하시는데 크게 수업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해드리고 있다. 그중에 한 분이 그랬을 것 같다는 것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남자분인데 편마비를 앓고 계셔서 눈에 띄었다. 1주일이면 몇 번씩 운동장을 돌기도 하고 그늘에 앉아 아이들 수업하는 것을 지켜보시기도 하셨다. 무슨 병의 후유증인지 모르지만 기우뚱거리며 안간힘을 쓰며 운동장을 걷는 모습이 안쓰러워 마음으로 위로하고 있었던 분이었다.

꽃 무더기를 발견하고 나서 시설 주무관님이 눈여겨 살펴본 바로는 바로 그 할아버지가 롤러장 앞 벽돌에 앉아 하염없이 가로등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혹시나 가로등 아래에 애완동물이라도 묻었을까? 소중한 무엇을 거기다 뒀나? 별의별 추측을 하며 같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다행이다 싶어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또 다른 문제로 할아버지께 말씀드리기로 했다. 학교에 나는 풀꽃이 아니라 학교 꿈자람숲의 귀한 꽃이나 나뭇가지를 꺾어다 놓으신다는 것이다.

며칠 후 드디어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강당에 행사가 있어 인사말을 하고 오는데 할아버지가 벽돌에 앉아 계셨다. 전해 들은 것처럼 가로등 아래의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마침 배움터지킴이 어르신들 드리려고 가지고 나온 음료와 간식거리를 들고 다가갔다.

"어르신, 학교 교장입니다. 많이 힘드시겠어요!"

"아이고! 아파서 딱 죽겠어요. 낫지도 않고 죽지 못해 살아요."

어눌한 발음으로 울먹이며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대화 중에도 시선은 멀리 꽃을 바라보셨다.

"아! 그래서 어르신이 저기 꽃을 갖다 놓으셨군요."

"예. 죄송해요. 내가 몸이 아파서 어디라도 빌어볼까 해서요."

순순히 본인이 그러셨다고 하셨다. 몸이 너무 아파 이렇게라도 낫게 해달라고 꽃을 갖다 놓고 빌었다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와 간식을 건넸다.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알고 계신 듯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이제 안 그러겠노라고 하셨다.

'학교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가로등 말고 부처님이나 가까운 교회에 가서 기도드리면 좋겠어요.' 혼잣말하듯 말하고 조용히 교장실로 들어왔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그 후로도 어르신은 한참을 꽃을 바라보고 앉아계셨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새로운 꽃을 꺾어다 놓지 않으셨다. 우리도 꽃 무더기의 꽃이 다 말라가도록 치우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할아버지를 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학교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할아버지께 기도의 공간으로 내어드리지는 못한 것이 가끔 죄스럽다. 할아버지의 꽃 무더기는 더 이상 없지만 어디서든 건강해지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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