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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여느 때처럼 아침 결재를 하고 학교 숲에서 꽃들을 살피는데 저쪽 담 너머에 무슨 사단이나 벌어진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커지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베트남? 러시아? 외국어였다. 남자들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가 마치 언쟁하는 것 같았는데 간간이 웃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담 너머 바로 옆집이 외국인 근로자들의 숙소였던 거다.

10여 년 전, 음성 시골 학교에 근무할 때 잠시 대낮에 출장을 나갔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이었고 한국인의 모습은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주변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았고 차가 없는 그들이 삼삼오오 걷는 모습이 마치 한국인들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였다. 그 후로도 더 많은 이들이 들어왔고 공장에도 농촌에도 그들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로 외국인의 입국이 제한되었던 농촌에는 일손 부족이 심각하다더니 그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작년 11월 카트만두발 비행기에 우리나라로 입국하는 네팔인들이 가득 찼었다. 어디 네팔뿐이겠는가. 외국인 근로자들의 증가는 다행한 일이다. 각종 산업에서 우리가 꺼리는 힘든 일을 그들이 맡아주고 있으니 말이다. 신협 이사장님의 축산농가에도 농촌지도자회장님의 대추 농사에도 일손 구하기가 힘들어 울상이더니 한시름 놓겠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떠들썩한 소리가 반갑게 느껴졌다.

청주 시내 초등학교에도 학급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주변 학교는 오히려 학급수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으로 듣고 뉴스로 보던 일이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도 일어났다.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가 입학생으로 들어오더니 얼마 전에는 베트남 국적의 학생이 편입학을 요청했다.

학교로서는 어렵고 혼란스럽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번도 없던 일이 생긴다. 국적도 다르고 교육시스템도 다르니 일일이 찾아봐야 하고, 처음 해 보는 편입학 절차인 만큼 처리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업무를 처리하는 교무부장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학교로 온 학생은 중학교에 가야 할 나이지만 한국말을 먼저 익히고 중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부모의 요청으로 초등학교로 왔다 한다. 엄마의 한국말 실력으로는 편입학 행정절차와 각종 안내를 이해시키기 어려웠는데 지역 다문화센터 코디네이터가 함께 오셔서 통역과 행정절차에 대해서 이런저런 도움을 주셨다. 학력심의위원회에서 5학년 편입학을 결정했다.

베트남 이름을 그대로 쓰는 작디작은 아이가 교장실을 방문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먼 이국땅에 와서 낯선 환경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학생만큼 어려울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엄마가 일하고 있는 한국에 온 아이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학교에서 적응해야 하니 그 긴장감과 두려움이 얼마나 클까나! 어깨를 잔뜩 움츠린 아이에게 손을 잡아도 되냐고 물었다.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작은 손을 잡아주며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해요. 한국에서의 학교생활 처음엔 힘들고 어렵겠지만 배우고 익히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친절하게 잘 대해주라고 얘기할게요. 힘든 일 있으면 내가 언제든지 도울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자그마한 여학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이가 엄마를 쳐다보니 엄마가 눈빛으로 격려했다. 아이는 그제야 살짝 웃으며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학교에 온 아이도 우리가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할 사람들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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