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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오랜만에 집안 곳곳을 치우고 정리하며 며칠을 보냈다. 먼저 부엌이다. 흐트러진 그릇과 냄비를 정리하다 안보이던 냉면기 하나를 찾았다. 선반의 냉면 그릇들 위에 포개 올려놓으려는데 손이 닿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 애를 써봐도 안 된다. 딱 1㎝만 더 컸더라면 쉽게 끝낼 수 있는 높이다. 의자 위에 올라가면 될 일이지만 그냥 해결해 볼 요량으로 궁리를 했다. '아하' 일단 쌓여있는 그릇의 아랫부분을 잡고 그릇들을 다 내렸다. 그 위에 냉면기를 하나 더 쌓아 아랫부분을 잡고 한꺼번에 다시 올려놓았다. 의자 없이 해결한 내가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생활의 지혜가 필요해.

다음은 내 작업실이다. 컴퓨터를 비롯하여 재봉틀, 온갖 취미 도구들로 가득 차 있는 방이다. 책, 원단, 리본, 각종 재료를 사서 넣다 보니 짐이 쌓이고 쌓였다. 어떤 일이든 평소에 제자리에 두고 조금씩 정리해나가야 깔끔한 법인데 자꾸만 미루다 보니 창고방이 됐다. 짐은 많고 가구를 더 들여놓을 공간도 없으니 낭패다. 이 방은 나만의 공간이라 남편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는데 이번엔 안 되겠다 싶어 도움을 요청했다. 남편은 서랍장과 장식장을 이리저리 옮겨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다. 도저히 들어갈 곳이 없을 것 같더니 배치를 다시 하는 것만으로 여지가 생겼다. 역시 정리의 달인이다. 내 힘만으로 안될 땐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서 해결하면 된다.

때론 내가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친정어머니에게 통돌이 세탁기를 사드렸단다. 이왕이면 크고 좋은 가전제품을 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 문제였다. 연로하신 어머니의 키와 팔길이에 맞지 않아 매일 빨래를 꺼낼 때마다 힘들어하신다는 것이다. 드럼으로 새로 사드려야 하나 고민하는 친구에게 가볍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천 원짜리 집게를 사서 엄마의 세탁기 옆에 걸어드려."

나도 드럼세탁기를 쓰다가 통돌이로 바꾼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빨래 꺼내기였다. 맨 아래쪽에 떨어져 있는 양말이나 장갑 한 짝을 꺼낼 때는 거의 세탁기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나마 조금 더 긴 검지와 중지를 집게모양으로 만들어 세탁기 바닥까지 닿을 듯 말 듯 겨우 양말 짝을 건져내는 일을 반복하다가 생각해 낸 묘안이었다.

'집게 모양을 만들 게 아니라 집게 하나 사면 되지.' 집게를 사서 걸어둔 후 바닥에 깔린 빨래들을 마지막까지 똑바로 서서 꺼낼 때마다 뿌듯해진다. 친구도 고민이 해결되겠다며 당장 집게 사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야 해결사다.

학교생활에서도 작은 아이디어가 곳곳에 필요하다. 때론 공간배치 하나로 해결할 수도 있고 때론 작은 아이디어로, 때론 돈을 들여서 불편함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여름철이 다가오니 전임학교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여름의 교무실엔 늘 얼음이 부족했다. 교무실무사님이 수시로 얼음을 얼려놓아도 사람들이 많으니 다 감당하기 어려웠다. 여름에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더 걱정이었던 얼음 문제를 교감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면서 한 번에 해결했다.

"교장 선생님, 교무실에 제빙기 하나 사주세요." 아담한 사무실용 제빙기를 당장 사게 했다. 제빙기 하나 들여놓았을 뿐인데 교직원들이 더운 여름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좋아했다.

집이든 학교든 생활의 지혜를 모아 조금만 개선하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아이디어를 짜내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때론 남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아이들이나 교직원들이 무감각하게 그냥 불편을 참고 있지는 않나 눈여겨 살피며 학교를 돌아본다. 나는야 해결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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