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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글을 쓴 지 딱 5년이 되니 처음이 떠오른다. 우연한 시작이었다. 2018년 연말 어느 날, 보은 교육장님이 전화하셔서 글을 써 보라고 하셨다. '내가 글을 쓴다고· 그것도 신문에 필진으로·' 평소에 일기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외에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나였다. 겁이 나서 선뜻 수락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글을 쓸 수 없는 이유를 주저리주저리 나열했지만, 교육장님은 너 아니면 없다고 말씀하셨고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한 달에 한 편, 1년만, 주제도 내용도 마음 가는 대로 쓰면 된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일기 쓰듯, 편지 쓰듯 편하게 시작했다. 실상은 한 달에 한 편이 아니라 2편이었고 1년이 쌓이고 쌓여 5년이나 되었다. 지금은 차곡차곡 100여 편의 글을 모았고 내 삶의 마중물을 만난 덕분에 나는 글 부자가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글을 읽은 선배, 친구, 후배가 알려주셨다. 재미있다는 말에 힘이 났고 비슷한 경험에 눈물이 났다는 전화에 감사했다. 미사여구 대신에 담백한 표현이라서 좋고 무엇보다도 쉬워서 읽기 편하다고 해주셨다. 주변의 격려가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게 한 또 하나의 마중물이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에 열광하지만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노래 부르는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이 내 글도 그런가 보다.

다음은 또 하나 내 인생의 마중물 이야기다. 교직 생활 11년째 되던 해, 청주에서 괴산의 작은 학교로 옮겼다. 출퇴근길도 멀었고 6학년을 맡아 정신없이 보내던 3월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부르셔서 갔더니 내 인사 기록 카드를 보고 계셨다. "어떻게 10년 동안 개인 연구가 한 편도 없나요?"라는 말씀에 당황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나에게 연구 점수나 승진에 대해서 말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누군가 말했는데 관심이 없거나 몰라서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청주에서의 8년간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정말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했다. 교실에선 미술지도와 창작동요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고, 각종 미술대회에 우수한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결혼했고, 아이 둘을 낳았고, 대학원 파견 2년간은 공부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승진을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날 교장선생님은 연구계획서 2편을 작성해서 내라고 지시하셨고 난 그 말을 따랐다. 덕분에 그 해 특별연구교사 1등급을 받았고 다음 해에 교총 연구논문 2등급을 받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나는 교장이 되었다.

삶은 많은 부분 운이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 마중물이 되는 사람을 만난 것은 내 행운이었다. 글을 써 보라고 해주신 교육장님과 인사기록카드까지 살펴보며 내 앞길을 챙겨주신 교장선생님처럼 말이다. 내가 한 일은 나에게 온 행운을 덥석 잡았고 실천에 옮겼다. 마중물을 받아 펌프질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깊은 우물물을 길어올려 시원하게 마시려면 누군가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삶의 마중물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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