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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교직생활 30년이 되었다고 연공상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상장과 기념품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벌써 30년이라니! 시간여행 하듯 세월 속을 기웃거리는데 첫 부임 전날 밤 전전긍긍하며 첫인사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키 작은 나무라 멀리 보지도 못하고 그늘도 작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을 해보니 신임교사인 나는 새로 부임한 24명 중에 맨 막내였다. 한 분이 대표 인사말을 하셨고 내 인사말은 주머니 속에서 혼잣말로 남았다.

옛날 일을 되돌아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지지만 부채춤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4학년 담임을 맡아 한 학기를 겨우 보내고 방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체육선생님이 가을운동회 계획서를 발표했다. 쭉 훑어보다가 내 이름을 발견하고 숨이 턱 막혔다. "4~6학년 부채춤: 김귀숙" 이 한 줄 때문에 방학도 방학 같지 않았다.

지금처럼 쉽게 자료를 찾아보거나 얻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던 때라 서점도 가보고 학습자료 책도 찾아봤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무거운 짐 하나를 어깨에 메고 한 달을 살았다. 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2학기 개학 날 아침 자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학교 가기 싫어~~"라며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도 그 답답했던 순간이 생생하다. "얼마나 부담스러웠으면 그랬을까!" 그때의 어린 나에게 토닥토닥 위안의 말을 보내주고 싶다.

이불을 휙 걷어내며 '어떻게든 되겠지 뭐. 그래 가보자.' 입술을 깡 다물고 출근했다. 다행히 며칠 후 학교 장학자료에서 "부채춤 안무"를 찾아냈다. 연습 첫 날 수백 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동작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아하게 팔을 오른쪽 왼쪽 앞쪽 뒤쪽으로 살랑살랑 흔들며 무릎을 살짝살짝 흔드는 기초동작을 가르쳤다. 첫날 치고는 제법 괜찮다 흡족해하며 조회대를 내려오는데 선배선생님이 부르셨다. 운동회의 부채춤은 부채무용이 아니라 부채를 들고 하는 매스게임이라시며 졸라맨으로 그려놓은 부채춤 비법 안무를 주셨다. 동작 하나하나 우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그려서 형태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미리 주셨으면 방학내내 그리 고민하지 않았을텐데 속상했다. 한 번이라도 보여주고 시켰으면 감이라도 잡았을텐데 원망도 했다. 사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혼자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선배 선생님들께 물어봐야 했었다. 한 번도 본 적도 해 본 적도 없는 것을 혼자 하겠다고 끙끙거렸으니 될 턱이 없었다. 작은 나무라 멀리 볼 수 없으니 옆에 있는 큰 나무들에게 물어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늦게라도 챙겨주신 선배님이 정말 고마웠다.

선배님의 비법 안무와 지원 덕분에 부채춤은 그 해 운동회의 꽃이 되었다. 분홍색에 하얀 깃털이 달린 부채를 들고 수백 명이 앞으로 흔들고, 위로 흔들고, 모였다가 흩어졌다 하면 내가 봐도 정말 예뻤다. 작은 원을 만들었다가 큰 원을 만들어 흔들고 돌면서 흔들고, 마지막엔 겹겹이 큰 원을 만들어 한참을 흔들었다. 이쯤 되면 학부모 관객들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키 작은 나무로 시작했던 나의 교직생활은 이제 30년 해묵은 나무가 되었다. 힘든 일 어려웠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혼자서 버텨온 것이 아니라 선배, 후배 선생님들과 함께 해왔기에 더 의미 있었다.

나무처럼 살다보니 그랬다. 키 작은 나무는 낮은 곳의 모습과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고 키 큰 나무는 높은 세상, 멀리 있는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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