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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 교장

 퇴근 후 스타킹을 벗는데 발뒤꿈치가 까슬까슬하다. 어라! 다른 쪽을 문질러 봐도 똑같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발을 올려놓고 발바닥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니 가뭄에 메말라가는 흙길같이 거칠다. 엄지발가락은 딱딱해졌고 여기저기 작은 굳은살도 보였다. 쉰이 넘도록 나를 지탱하느라 애를 썼으니 멀쩡한 게 이상하지 위안하면서도 속상했다.

 씻고 나서 얼굴에 바르던 로션을 발바닥에까지 발라주었다. 발은 내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대접을 덜 받은 것이 사실이다. 밖으로 보이는 얼굴이나 손에 찍어 바르는 고급 크림은 고사하고 온몸에 바르는 바디로션도 발바닥에는 생략했다. 가구나 옷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챙겨야 명품이 되는 건데 내 발을 너무 홀대했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켜자마자 광고가 내 눈앞에 쑥 나타난다. 보송보송 아기 같은 발 이거 하나로 된다고 각질제거 크림을 권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얘들은 내 발에 각질이 생긴 것을 어떻게 알았담!'

 특별히 검색해보지도 않았는데 정보가 떡 하니 나타났다. 가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내 생각을 알고나 있는 듯 옷이며 신발이며 슬쩍 권하더니 오늘도 그런다. 빅데이터는 내 고민을 찰떡같이 알아차리고 관심 갈 만한 것을 들이댄다. 참 편리하면서도 무서운 세상이다.

 정보제공에 감사하며 부드러운 발바닥을 만들어주는 비법이 뭔지 찬찬히 읽어보니 크림을 사서 바르면 된다고 했다. 한 번만 바르면 굳은살도 각질도 싹 벗겨지면서 새살이 돋아나 아기피부처럼 된다니 난 괜히 걱정을 했나보다. 한번 클릭하니 연관 검색어에 각질제거 크림이 수십 가지를 추천했다. 신박한 각질 제거기도 있었다. 저걸 사야하나 망설이다가 미뤄뒀다.

 다음 날 저녁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앉으니 남편이 TV 앞에서 신문지를 깔아놓고 '윙~' 하며 발바닥을 밀고 있다. 남편의 손안에서 손바닥만한 둥그런 기계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광고에서 봤던 각질제거기였다. 남편은 언제 저걸 구입했담!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윙~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이 굳은살은 남편 것일 뿐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도 내 일이 아니라 듣고도 보고도 지나쳐버렸나 보다.

 내 발뒤꿈치가 까슬까슬해지니 안보이던 것도 보이고 오래된 기억도 소환했다. 아버지의 발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아버지의 발바닥을 떠올리는 것은 덜 아문 상처를 건드리는 것처럼 아프다. 농사꾼이셨던 아버지는 사시사철 쉬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고단한 농부의 삶을 사셨고 겨울 농한기에는 산불감시원 일까지 하셨다.

 어느 겨울 아버지가 무명실을 찾으시며 꿰어달라고 하셨다.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시나 했더니 양말을 벗으셨다. 일곱 식구 삶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지고 걸어오신 아버지의 발이었다. 굳은살이 견디다 못해 갈라져 있었고 걸을 때마다 아프다며 꿰매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보는 것만으로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져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는 굳은살은 아프지 않다고 말씀하셨지만 어린 나는 차마 아버지의 발에 바늘을 찌르지 못했다.

 내 발 뒤꿈치에 생긴 까슬까슬한 각질과 조그만 굳은살에 화들짝 놀라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정작 남편의 오래된 굳은살은 내 고통이 되지는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갈라진 발이 속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상처에 연고 하나 발라드릴 생각도 못했던 무심한 딸이었다.

 내 일이 돼서야 비로소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남의 고통과 슬픔이 내 아픔의 크기만큼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가지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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