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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 교장

여름방학, 아이들이 다 배운 책이라고 버린 교과서들이 창고에 쌓여 있었다. 교감이 되면서부터 한동안 교과서를 들여다볼 수 없었기에 궁금해졌다. 요즘 교과서에는 어떤 글들이 나올까? 4학년 국어 교과서를 펼쳤는데 마침 아는 작가의 작품을 발견했다. 동시집 『사과의 길』을 출간한 보은 출신 김철순 시인의 작품 「등 굽은 나무」가 실려있었다.

"텅 빈 운동장을/혼자 걸어 나오는데/운동장가에 있던 나무가/등을 구부리며/말타기놀이 하잔다/얼른 올라타라고/등을 내민다"

시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시적 은유를 잘할까 감탄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아이들의 책에서 나도 배우고 감동하며 창고를 나왔다.

교과서를 볼 때면 '교과서는 억울하겠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TV나 언론매체 등에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고리타분한~' 이런 표현을 보거나 들을 때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글이나 이야기에 대한 폄하 발언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국어교육 방법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 자신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한꺼번에 교과서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기에는 교과서에 좋은 말과 글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어야 할 주옥같은 글들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여고 시절 배웠던 이양하 수필가의 「신록 예찬」은 특히 그렇다. 봄에 움이 트고 새싹이 돋아날 때부터 한여름 초록이 짙어질 때마다 이양하 수필가의 「신록 예찬」은 내 입속에 맴돌곤 한다.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淸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이 한 줄의 문장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내 시야를 더 화사하게 하고 나의 태도를 더 경건하게 한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다면 이 계절의 신비함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삶의 교훈으로 간직한 이야기도 많다. 편지글의 형식을 공부하는 단원이었다. 조카가 멀리 있는 삼촌에게 편지를 보내며 선물을 함께 보냈다. 인사말로 시작하여 가족 안부를 전하고 선물 보낸 이야기를 했다. 조카는 나한테 필요가 없으니 삼촌이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삼촌은 답장 글에서 나한테 필요 없어서 준다는 말보다 삼촌한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짚었다. 사소한 것 하나 친구에게 건넬 때, 이웃과 나눌 때마다 생각나는 글이다.

이해인 수녀의 시나 유안진, 피천득 작가의 수필은 또 어떤가?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곱씹고 또 곱씹어도 좋은 문장들이 그 속에 있었다.

피천득 작가의 「인연」은 제목만 들어도 명치끝이 아릿해진다. 열일곱의 작가가 동경에서 처음 만났던 아사코와의 인연을 담담하게 수필로 썼다. 서로 스쳐 가는 인연이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 끝에 나와 있던 문장을 옮겨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글을 배우며 마지막 만남에 대해 친구들과 정답도 없는 토론을 하기도 했었다. 우리 모두 젊은 시절에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제 세월이 교차하여 나의 교과서에서 배운 글인지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교과서에 나온 글인지 구분이 안가는 것도 있다. 아무렴 어떠랴! 교과서에 나오는 말 하나, 문장 한 줄이 지금까지 남아 내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리타분하다는 누명을 쓴 억울한 교과서를 위로하고 싶어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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