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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새해가 밝았다. 원하지 않아도 또 한 살의 나이를 먹었다. 반백 년 쉰을 넘기면서부터 인생 후반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그리도 길었던 1년이 지금은 시작과 동시에 끝난 기분이다. 세월 참 빠르다.

몇 해 전부터 딸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올해도 금요일 밤늦게 서울에 와서 새해를 맞이했다.

딸들과 지낼 때마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참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느낀다. 세대가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삶의 방식도 다르다지만 디지털을 이용하는 경험치에서 특히 더 그렇다.

큰 애가 경동시장 안에 극장을 개조해 12월 중순에 스타벅스를 열었다며 가보자고 했다. 오래된 전통시장 안에 대규모의 카페라니 흥미롭다. 딸들과 나는 동의했는데 남편은 그 시간에 동묘에 가고 싶단다. 오래된 물건, 골동품을 늘어놓고 파는 구제시장이 펼쳐진 곳이다. 남편은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우리는 옛 경동극장으로 갔다. 가는 길에는 어르신들이 시장을 꽉 채우고 있었고 간간이 젊은 사람들도 보였다. 시장 구석 3층에 오래된 인삼 파는 가게들 사이를 지나니 카페가 나타났다.

레트로라는 말에 어울리게 실내장식이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1960년에 문을 연 경동극장은 언제인가 문을 닫았고 폐건물로 있던 곳을 새롭게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관 스크린이 있던 곳에 주문대가 있고 의자들은 모두 앞쪽을 향해 있는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살렸다.

아직 오전인데도 자리가 꽉 찼다. 주문대 앞에 줄도 길었다. 내 생각에 한 명은 주문대에 줄을 서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찾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딸들과 다닐 땐 되도록 지켜보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조용히 있었다. 이리저리 자리를 찾아다니더니 방금 일어난 커플이 나가기를 기다려 자리 잡았다. 그리고는 둘 다 핸드폰을 꺼내 이 매장만의 시그니처 메뉴는 없는지 찾아본다. 어떤 메뉴를 주문할 건지 묻고는 그 자리에서 앱으로 주문했다. 사이렌 오더라고 한단다. 스타벅스 로고에 있는 여자가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문득 진동벨도 없는데 우리 음료가 준비된 것을 어떻게 알지 생각했다. 벽면의 하얀 스크린에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떠 있었다. A-85, 콩콩이, 예지니···. 저건 뭐니? 묻자 메뉴가 준비되면 영사기로 엔팅크레딧이 올라가듯 주문자의 이름이나 번호가 위로 올라가도록 한다고 했다.

카페에 진동벨이 처음 생기고 "드르륵" 움직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던 일이 떠올랐다.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이 서툴러 한참을 헤맸었던 기억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젠 아예 앉은 자리에서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고 번호가 뜨면 가서 커피와 음료를 가져온다.

넷 밖에 안되는 가족 안에서도 다가온 미래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 아이들은 이미 미래를 누리며 살고 있고 나는 그 변화를 좇아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쁘다.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과거를 향해 달려갔다.

뉴스에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유명 브랜드가 전통시장 안에 다양한 세대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 속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저들은 또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제각기 다른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닐까?

같은 나이의 친구,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라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까? 같은 50대라고 세대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가르치는 교사인 우리는 적어도 반걸음은 앞서가야 한다고 떠벌렸었다. 휴, 이젠 서둘러 가도 한걸음 늦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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