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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폭풍 속 같았다. 몸 하나 숨길 곳 없는 광야에서 세찬 비바람에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작은 울림으로 시작한 '공교육 멈춤의 날'은 아우성이 되고 울분이 되어 학교를 초토화했다. 어떤 징계도 각오하고 멈춤을 선택한 교사에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고, 학교에 남아 추모하신 선생님의 슬픔과 고통에 가슴 아팠다. 그렇게 그날이 왔다.

9월 4일 아침, 학부모회 임원들이 현수막을 달고 캠페인을 하며 교권 회복 및 교사 존중의 마음을 표현했다. "선생님, 다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라는 말에 그냥 주르륵 눈물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병가 낸 담임 학급의 보결상황을 확인하고 교장실에 앉았다. 학교는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활기차게 웃고 떠들었고 학교엔 공사도 있었는데 내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나 혼자만 남은 것만 같았다.

나는 90세 노모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시는 대한민국의 초등 교장이다. "내 손가락을 끊어서라도 니 공부시켜 줄끼다."하신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어야 했다. 나에겐 무거운 책임감, 남에겐 너그러운 사람이고자 했고, 30년 넘는 교직생활 동안 몰라서 죄짓지 않으려고 늘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에 수많은 밤을 세웠다. 방과후 특기지도를 하며 즐거웠고 밤늦게까지 자료준비하고, 보고서를 쓰면서 보람을 느꼈다. 주말도 없이 미술대회 나가도 학생들의 실력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며 행복했다. 남의 자식 가르치느라 내 자식 단 하루 입학식, 졸업식, 공개수업, 운동회도 못 갔고 남편의 학위수여식도 못 갔다. 그때는 그게 맞는 줄 알았다. 그러다보니 교장이 됐다. 어디 나만 그랬을까? 내가 아는 교장 선생님들은 대부분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고 노력하신 분들이었다.

그런데 교장이 자랑스러운 자리가 아니란다. 관리자에게 아부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이고, 수업은 등한시하고 승진만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란다. 정작 교장이 되어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교사의 아픔은 나 몰라라 하고 각종 민원은 회피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는 사람이란다.

묻고 싶었다. 내가요? 정말요? 언제요?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릴 때 교장은 숨었다고요? 교장실에 쳐들어온 학부모의 고함과 악다구니를 다 받아낸 것이 교장인 난데요? 어린 담임교사 놀랄까 내보내고 학부모 달래고 진정시키고 정작 나는 입술 꽉 깨물고 앉아 한참이나 움직이지도 못한 적도 있었답니다. 나는 교사와 학생 모두의 교장으로 보듬고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니까, 내일도 교육은 이어져야 하니까 참아왔던 겁니다."

교사가 회의감, 우울감이 짙어지는 만큼 교장 또한 슬픔과 우울을 느끼고 무기력한 교육 현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말하면 뭇매를 맞으려나!

멈춤 후에 다시 시작된 오늘, 교장은 재량권도 뺏겼고 권위도 내려앉았으며 남은 것은 자랑스러움 대신 부끄러움이다. 이제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정돈하고 새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기운이 없다. 짓누르고 위협하며 분열시켜놓은 학교를 다시 추슬러야 하는데 할 말이 없다. 난 대한민국의 초등 교장이라 선생님들과 함께 너무나 예쁜 우리 아이들 잘 가르칠 힘을 내야 하는데 동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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