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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불을 지피시다가 나에게 잠시 아궁이를 맡기고 나무를 가지러 나가셨다. 나는 아주 중요한 일을 맡은 것 같아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열심히 살폈다. 불이 사그라드는 것 같아 나무 부지깽이로 솔잎을 긁어 넣으려는데 순식간에 따다닥~ 불씨가 튀어 불이 붙었다. 어린 나는 어쩔 줄 몰라 크게 울었고, 달려오신 아버지가 번지기 전에 불을 끄셨다. 하마터면 초가삼간 다 태울 뻔했던 이 경험으로 나는 꺼진 불도 다시 보게 되었고 화재 소식을 들으면 유난히 몸이 움츠러든다.

역대 최장기 산불로 기록된 울진·삼척 산불이 10일 만에 진화됐다. 주말의 단비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동안 수고한 수많은 소방대원과 자원봉사자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황당한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위로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천년고찰 불영사와 금강송 군락지는 지킬 수 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고 한울 원전, 삼척 LNG 가스 기지 등 국가기간시설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 산불이 다시 보여주었다. 연기가 난지 불과 3분 만에 산기슭으로 타올라 갔고 소방차가 11분 만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불길은 온 산을 덮쳐버렸다. 화재의 원인이 뭘까 궁금했다.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추정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첫 발화지점이 산기슭과 맞닿은 도로 옆 배수로였다. 물이 말랐고 나뭇가지와 낙엽이 남아 있던 배수로 안쪽에서 불이 시작되었단다. 그때 지나간 4대의 차량이 의심을 사고 있다. 차에서 밖으로 던진 담배꽁초가 발화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심코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화마가 온 산을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모습과 온 힘을 다해 산을 누비며 불길을 잡으려 애쓰는 소방대원들의 영상을 볼 때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손끝이 정말 미웠다. 그리고 더럭 겁이 났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 읍내 학교로 옮긴 후 아침마다 발견되는 운동장에 버려진 담배꽁초 때문이다. 학교는 흡연 금지구역임에도 아이들의 공간을 빌려 쓰는 청소년과 어른들이 버려놓고 간 흔적들이다. 아침마다 주무관님이 한 움큼씩 주워버려도 끝이 없단다.

점심을 먹고 학교 숲을 한 바퀴 돈다. 봄빛이 완연해지고 있는 숲엔 어느새 꽃다지가 올라왔고 풀들이 먼저 자리잡고 있었다. 학교 숲 가운데에 있는 벤치 아래에 또 누가 언제 그랬는지 모를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널려 있다. 가을 내내 꽃을 피웠던 국화 꽃대 사이에도 여기저기 마른 나뭇잎 사이에도 담배꽁초가 있다. 가슴이 철렁했다. 불씨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의 너른 학교 운동장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이자 건강 지킴터가 된다. 어르신들이 느린 걸음으로 트랙을 돌다가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청소년들이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만남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설치돼 있어 여건도 참 좋다. 이렇게 학교가 지역사회의 문화, 예술, 체육의 중심공간으로 잘 쓰인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아이들의 교육공간을 어떤 사랑과 정성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안다면 이러지는 않을텐데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이 아쉽다. 함께 쓰는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핀셋을 꺼내 담배꽁초를 주웠다. 양심을 버린 주인을 어떻게 찾아주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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