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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어릴 때 불우한 이웃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TV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참상을 보여줄 때면 내가 커서 부자가 되면 꼭 남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어른이 되었고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도 남을 도울 만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니 언제 남을 돕겠는가? 마냥 뒤로 미룰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조금이라도 나누자는 생각으로 월급에서 일정액을 기부하기 시작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다.

"불우한 이웃"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지금은 어엿한 가장이 되어 누구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내 조카 이야기다. 나는 첫 발령을 받고 학교 근처에 작은 방을 구했다. 이사하던 날 큰언니가 멀리서 조카들을 데리고 왔다. 어린 동생이 혼자 이사하는 것을 걱정해서 이사를 도우러 온 것이다. 이삿짐이라고도 할 것 없는 단촐한 살림이었는데 어린 조카는 그걸 눈여겨봤나 봤나 보다.

그해 겨울 조카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봉투 속에는 카드와 함께 꼬깃꼬깃한 돈 2천 원이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이모한테 도대체 왜 돈을 보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야야, 그걸 니한테 보냈더나?" 자초지종을 듣고 언니도 나도 한참을 웃었다. 학교에서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가져오라고 했단다.

"엄마, 불우한 이웃이 뭐야?"

"응, 집이 가난해서 TV도 없이 어렵게 사는 사람이란다."

"그럼 막내이모가 불우이웃이네." 라고 하더니 나에게 성금을 넣어 보낸 것이다. TV도 없이 자취생활을 시작하는 이모의 모습을 보고 갔으니 졸지에 내가 불우이웃이 되었다. 조카의 선물 2천 원을 들고 작고 남루한 내 방을 둘러보니 확실히 불우한 이웃이긴 했다. 그땐 다들 그렇게 살았고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녀석의 엉뚱한 발상이 내 마음에 내내 따뜻한 에피소드로 남았다.

연말연시 우리 학교에도 따뜻한 사랑과 온정이 피어나고 있다. 5학년은 지난 달부터 교장실 앞에서 계란을 팔아 이웃돕기 성금을 모으겠단다. 4개 3천 원이라는 거금에 놀라 너무 비싸다 했더니 귀한 백봉 오골계의 유정란이라 엄청 할인한 가격이란다. 나와 선생님들 몇 분, 6학년 재준이가 구입했다.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신선하고 맛있는 맛에 반했고 5학년들은 날마다 닭장을 오가며 밀린 주문 물량을 맞추기 위해 들락날락했다.

6학년도 질세라 학생다모임자치회를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투게더 행사를 열겠다 했다. 떡볶이, 어묵, 콜팝을 만들어 팔겠다는 것이다. 이 시국에 그런 행사를 여는 것이 맞는가? 반대에 부딪히자 담임은 아이들의 실망이 클 것이라 걱정했다. 선생님들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안전하게 행사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진행하자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적극 도왔다. 3학년은 멋진 입체 메뉴판을 만들었고 선생님들은 음식준비와 아시 튀김을 자처했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모이지 않게 시차를 두고 행사장을 방문했고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났고 거금 17만 원을 모았단다. 그 돈으로 조금 더 힘든 이웃을 돕겠다니 기특할 따름이다.

조카에게 불우이웃이었던 난 아직도 부자가 못됐다. 부자가 되기만을 기다렸다면 지금까지 아무것도 나누지 못할 뻔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도 지금 다들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성금을 모아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한껏 들떠 있다. 주머니의 크기에 상관없이 조금씩 온기를 더하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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