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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추석 연휴 임시공휴일이 지정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셋째 언니가 자매들만 청주에 모여 근교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딸 넷이 명절날 다 같이 모이기는 쉽지 않았었다.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시절이 바뀌니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나는 물론 찬성이었고 남편과 형부들의 협조로 3박 4일의 일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엄마 없이 딸들만 모이려다가 조카 진주가 기특하게 할머니의 휠체어를 책임지겠다며 함께 모시자고 했다.

언니들과 명절을 보내게 된 기대감과 함께 시간이 다가올수록 뭘 해 먹일까, 어디로 갈까 걱정이 앞섰지만 그럴 필요가 없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연휴 첫날 엄마와 자매 넷, 딸들과 조카까지 모이니 여자 여덟에 남자는 남편 하나였다. 이 여행을 주도한 셋째 언니는 큰 형부의 찬조금을 받아왔고 각종 과일을 준비했다. 솜씨 좋은 둘째 언니는 떡과 김치, 알싸한 파김치도 맛있게 담가 왔고, 사위가 사준 한우와 와인까지 푸짐하게 챙겨왔다. 큰언니가 사 온 돼지껍데기 무침은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모인 첫날부터 왁자지껄 끝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만날 때마다 듣던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재미있었다. 잊고 있던 어릴 적 이야기도 꺼내고 나는 모르는 추억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다. 언니의 슬픔에 함께 울기도 하고 형부들 흉보기도 신이 났다. 엄마는 옆에서 가끔 자식들의 잘못된 기억도 바로잡으셨고,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견뎌준 딸들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셋째 언니는 우리 중에 아흔의 엄마가 가장 총기가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엄마의 딸에서 남의 집 며느리가 되었고, 사위의 아내, 손주들의 엄마로 살아왔다. 바쁘다고, 멀리 산다고, 힘든 일이 있다고 핑계 대며 1년에 한두 번 보는 것도 어려웠다. 이렇게 엄마와 딸 넷이 함께 시간을 보내니 엄마의 딸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추석 명절 내내 우리는 그 긴 세월 겪어온 우리들의 기쁨과 슬픔의 추억 이야기로 채웠다.

첫 여행은 속리산 법주사 탐방과 세조길 걷기였다. 조카와 나는 복천암까지 차로 가서 용바위골 휴게소까지 휠체어를 밀고 가보자고 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들과 경사가 심한 산길을 엄마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끌며 올라가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급경사에서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젊은 등산 커플이 도와주었다. 마지막 계단에서는 휠체어를 탄 엄마를 번쩍 들어 올려서 목적지에 도달했다.

"야야, 힘들어서 못 간데이." 하시던 엄마도 안도하시며 유리알처럼 투명한 계곡물과 한결 시원해진 청량한 공기, 초록의 숲에서 마냥 행복해하셨다. 걸어서 늦게 도착한 남편과 언니들도 우리들의 도전에 깜짝 놀랐다. 바싹 감자전과 파전 안주에 동동주 한 잔씩 하며 어제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또 하루를 엄마와 딸들의 시간으로 채웠다.

두 번째 일정은 청남대, 매운탕 맛집, 세종 호수공원 산책이었다. 청남대의 가을과 매운탕 맛집은 모두의 눈과 입을 만족시켰다. 아랫녘 사람들이 세종 호수공원을 걷는 것도 새로워했고, 남편이 꼭 보여주고 싶어 했던 금강 보행교의 야경도 아름다웠다.

3박 4일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휠체어 탄 엄마와 딸들 그리고 그 딸들이 함께 평범한 풍경 속에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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