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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숲속 수련원에서 1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아침 일찍 산책하는데 제법 큰 잣방울이 떡 하니 길 위에 누워 있었다. 등산 다니며 딱 한 번 잣방울을 주워 본 적이 있었는데 딱 그렇게 생겼다. 솔방울 보다 크고 길쭉하며 찐득한 송진이 묻어서 잡기도 어려운 모양새다. 발로 짓이기니 딱딱한 알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잣 맞다. 주변에 여기저기 떨어진 지 오래된 잣방울들이 보였다. 청설모가 갉아먹었는지 알 없는 옥수수대 같았다.

주인이 관리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가만히 서서 매의 눈으로 훑어 잣방울 몇 개를 더 획득했다. 집에 가져와 잣을 깠다. 딱딱한 껍질 속에서 상처없이 잣을 까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힘을 가하면 형체도 없이 박살이 나버렸다. 몇 개 건지지도 못했다. 어쩌다 성공해서 잣을 입에 넣었을 때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어제는 강당 뒤를 돌아보다가 보도블럭 위에 떨어진 잣방울을 발견했다. '어디에서 떨어진 거지?' 하고 올려다보니 잣나무다. 여기서 4년째 근무중이고 나무에 관심 좀 있다했는데 잣나무를 알아보지도 못했고 잣방울은 더더욱 보지도 못했다. 이유를 찾자면 강당을 짓기 전의 그곳은 우람한 플라타너스 뒤에 체육창고용 컨테이너가 있었고 눈길이 가기도 발길이 닿기도 힘든 곳이었다. 작년에는 계속 공사중이어서 가볼 수도 없었는데 올해 길이 생겨서 눈에 띄었나 보다.

내가 처음 잣을 발견하고 딱딱한 껍질을 까서 속살이 뽀얀 잣을 입 속에 톡 털어넣었을 때의 고소함을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손에 들었던 잣방울을 바닥에 내려놓고 궁리를 시작했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다음 날 아침 학교에 오자마자 잣이야기를 하니 교감선생님이 바로 거기서 주웠다며 잣알을 한 움큼 꺼내 놓으셨다. 잣을 까서 선생님들에게 먹어보게 했다. "잣은 마트에서 사는 거 아닌가요?" 하며 신기해하셨다. 선생님들도 잣이 나는 과정을 모르시니 가르칠 맛이 나겠다. 하하하

잣은 마트에서 비싸게 사는 게 맞다. '극한 직업'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잣 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높은 잣나무에 다람쥐처럼 날쌔게 올라 잣을 따는 채취꾼은 위험천만이었다. 그 비싼 잣이 우리 학교 숲에서도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어떻게 채취하는지 가르쳐주고 싶었다.

5~6학년 학생들과 학교숲으로 갔다. 이름하여 '학교장과 함께 하는 학교숲 체험활동'이었다. 양손에 장갑을 끼고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학교 숲 소나무 앞으로 갔다. 체험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별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소나무는 잎이 2개,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3개, 잣나무는 잎이 5개이다. 잎을 따서 아이들과 살펴보며 잣나무 밑으로 갔다. 각자 잣방울을 한 개씩 주워 조회대 앞 벤치에 모였다.

잣을 깔 수 있는 도구를 여러 가지 찾아와 아이들과 잣을 깠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잣모양이 나기도 전에 여기서 퍽! 저기서 퍽! 다 박살을 냈다. 시간이 지나자 나름대로 방법을 구안했다. 오목한 돌 사이에 잣을 놓고 고무망치로 두드리면 잣을 일그러뜨리지 않게 깔 수 있다고 했다. 그래 그게 공부지. 김선생님은 잣이 비싼 이유를 알겠단다.

아이들의 입속에 잣을 하나씩 넣어주며 맛보게 했다. 어떤 아이는 쏙쏙 받아먹으며 고소하다 하고 어떤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맛보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도 괜찮아. 다 경험이지. 창의는 경험의 연결이라는 것을 믿는다. 경험의 양이 쌓이면 어느 순간에 능력으로 발현될 것을 기대한다. 이것저것 자꾸만 가르쳐주고 싶은 걸 보면 교장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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