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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5.03 16:36:59
  • 최종수정2023.05.03 16:36:59

김귀숙

동광초 교장

아이들과의 만남이 더 즐거워지는 요즘이다. 서로의 표정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마스크를 벗으면서 이제 아는 얼굴도 많아졌다. 학교를 종횡무진하며 말썽을 피우는 아이, 놀이터 그네에서 떠나지 않는 아이를 알게 되었고 누가 인사말을 다정하게 하는지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이름도 생겨서 가끔 누구야 라고 불러주면 수줍게 웃으며 고맙다고도 한다.

작년, 아이의 이름을 몰라줘서 생겼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현관에서 검정 티셔츠를 입은 통통한 남자아이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넌 인사를 바르게 잘하는구나? 몇 학년이니? 이름이 뭐니?" 벌써 저만치 걸어가며 하는 말이라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며칠 후 한 아이가 지나가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응, 인사해줘서 고맙다. 넌 누구니? 몇 학년이니?", "지난번에 말씀드렸는데…." 아이가 의아해하는 것을 느꼈지만 변명도 하지 못했는데 지나가 버렸다.

얼마 후 등교 시간, 주차장에 서 있는데 어머니 한 분이 말을 걸었다. "교장 선생님이시죠? 우리 영우(가명)가 교장 선생님 때문에 엄청 속상하대요. 이름을 알려드렸는데 모르신다고요."

'영우? 누굴까?' 매일 만나는 아이들은 대부분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수시로 이름을 묻는데 교장이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아서 서운하단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누구의 잘못이랄 것도 없다. 아이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마스크를 쓴 채로 몇 번 보고 인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몰랐을 것이다. 비슷한 머리 모양, 검은색 옷, 평균 키, 큰 특징이 없는 아이들을 인사 한두 번으로 어떻게 알아보며 이름까지 기억하겠는가! 문제는 학교 어디서든 그 아이를 다시 만나도 또 알아보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묘책을 생각하다가 담임에게 아이의 사진을 슬쩍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마스크 쓴 모습과 마스크 벗은 사진을 다 받았다. 아이는 평범하고 귀여운 모습이었고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얼굴이었다. 다른 옷을 입고 등교하면 또 만나도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영우를 찾아 자연스럽게 아는 척을 해주기로 했다. 교실로 찾아가서 사과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창문 아래에서 6학년 선생님과 학생들 목소리가 교장실에 들려왔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을 쭉 둘러봐도 영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끝냈을 때 시선을 멀리 두고 "영우야?"하고 불렀다.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의 무리에서 한 아이의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사진 속의 그 아이였다. 앞머리가 약간 일직선인 특징만으로 아이를 찾아냈다.

"너희들이 수업을 열심히 하길래 교장 선생님이 나와 봤어. 영우야, 네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선생님이 칭찬하시더라. 반장 역할도 잘한다며? 앞으로도 기대할게." 마치 우연히 지나가다가 칭찬하는 것처럼 한 마디 건네고 유치원 쪽으로 걸어갔다. '됐어. 자연스러웠어.' 마치 암호를 푸는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다.

지난 2월, 졸업식 날 오후에 영우 어머니는 교무실과 교장실에 예쁜 꽃바구니를 보내셨다. 아이가 교장 선생님이 자기를 알고 있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면서 말이다. 둘이 이 비밀을 알게 된다 해도 나의 노력을 이해할 거라 믿는다.

푸르른 5월, 아이들 얼굴을 맘껏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뿌연 안개 속에서 아이들 얼굴만큼이나 밝은 세상으로 빠져나온 기분이다. 학생을 만날 땐 또 다른 영우가 없도록 귀를 쫑긋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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