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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가끔 학부모가 서운함을 전하거나 민원을 제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학교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설명이 아니라 공감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억울함을 느낀다면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 답답한 속사정을 먼저 들어주어야 한다. 생활에서 살짝 억울한 일을 경험하고 나니 더욱더 확고해진다.

10월 초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하며 경량 패딩을 하나 샀다. 로고에 여우가 웅크리고 있는 북유럽 브랜드다. 하나쯤은 갖고 싶었던 터라 청주시청 근처 수입 브랜드 전문 아웃도어 매장에서 나름 비싼 값에 샀다.

네팔의 가을은 생각보다 춥지 않아 4천600m에 올랐을 때 처음 입었다. 다음 날 새벽 옷을 접어 가방에 넣는데 등 오른쪽 부분에 6㎝ 정도의 하얀 줄이 있었다. 뭐지? 어두컴컴한 롯지였고 출발 시각이 다가와 일단은 넘겼다. 다음 날 저녁 급격하게 추워져서 다시 패딩을 꺼내 입었다. 마침 조명이 밝은 호텔이라 잠들기 전 옷을 벗어 자세히 살펴봤다. 하얀 줄은 퀼팅 라인에 깃털이 수북이 빠져나와 덩어리진 것이었다. 검정 패딩에 흰색으로 굵게 주차선을 그린 것처럼 선명했다.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깃털 뭉치가 다 나오면 빵빵한 패딩이 홀쭉해질 것 같아 어떻게든 밀어 넣어 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교환해야겠다 생각하며 입지도 않다가 트래킹 마지막 날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져서 반나절 더 입었다.

귀국하자마자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 매장에 갈 수 없었다. 판매자와 통화 후 사진을 보내고 1주일 후 방문했다. 판매자는 사장이 봐야 한다며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교환이 가능할까? 세일해서 30만 원도 넘게 주고 산 옷인데 입자마자 깃털이 뭉텅이로 빠져나오는 것은 제품 불량이니 교환해주겠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사장은 옷을 대충 보더니 단호한 어조로 명확하게 말했다.

"우리는 병행수입처이고 AS 정책에 대해서 말하겠다. 소비자가 옷을 구매한 후 착용한 것은 어떠한 경우도 소비자의 과실이므로 교환은 불가하다. 무료 수선은 가능하며 수선 결과, 표시가 날 수 있고 그 경우에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

소비자의 과실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내 등에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닌데 털이 끝도 없이 빠져나오도록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더욱 화가 난 것은 다음 말이었다.

"고객님이 취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소비자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다 제품을 보내서 과실 여부를 문의해라. 설사 소비자원에서 하자가 있다고 결론지어 중재를 진행한다 해도 우리 AS 정책상 교환은 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지금 무료 수선을 맡기고 가든가 아니면 소비자원과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다시 수선을 맡기러 오든지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사장은 비싸게 산 옷을 입자마자 깃털이 숭숭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황당해했던 나를 먼저 위로하거나 공감했어야 했다. 사과도 위로도 한마디 없이 선택의 의지도 없는 AS 정책을 늘어놓는 동안 내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교환은 안 되고 수선만 가능하다는 말을 그렇게 길고 단호하게 가르치듯 설명한 것이다. 무료 수선을 거부하고 집으로 옷을 가져왔다. 고객 즉 나의 과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이 말한 병행수입처를 검색해봤다. 일부 사이트에서 병행수입처는 정식회사에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루트를 통해서 수입해서 파는 곳이고 정품이 아닐 수도 있으니 되도록 직구를 하거나 공신력 있는 곳에서 구매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곳은 공신력 있는 곳인가? 내 옷은 진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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