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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동광초등학교 교장

어릴 적 시골집 엄마의 장롱 위에는 상자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언제 샀는지 얼마나 그 위에 있었는지 모르는 그릇 세트였다. 평소에 쓰는 엄마의 그릇은 낡은 사기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딸들이 꺼내서 쓰자고 했더니 "느그 언니 시집갈 때 줄끼다"라며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없는 살림에 큰 딸내미 시집갈 때 빈손으로 보낼까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엄마의 애틋한 마음을 알면서도 늘 허름한 그릇만 쓰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릇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큰 언니 집에서도 못 봤다. 상자가 장롱 위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유행도 바뀌고 물건도 흔해져서 특별한 의미를 찾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릇에 대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처음 교감으로 부임한 해 여름방학이었다.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나오는 교직원과 방과후 선생님을 위해 간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경주 출장길에 여고 동창이 하는 찻집에서 사 온 향기 좋은 홍차가 생각났다. 바닐라 향이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나는 특별한 차였다. 차에 문외한인 내가 이름도 단박에 외웠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마리아쥬 프레르 웨딩임페리얼 긴 이름이었는데 말이다. 귀하고 좋은 사람에게 대접하고 싶어서 구매한 것이니 그날 사용하기 딱이었다. 여름 과일과 고급 과자도 준비했다.

교무실 싱크대 안쪽에 보관하던 깔끔한 찻잔과 예쁜 다과용 그릇들을 꺼냈다. 특별한 손님이 올 때만 사용하는 거란다. 손님용 그릇을 씻고 있으려니 옆에서 교무실무사가 물었다.

"교감 선생님, 오늘 손님 오세요?"

"네, 아주 소중한 분들이라 좋은 그릇에 대접하고 싶어서요."

예쁜 그릇에 온갖 정성을 다해 과일을 깎고 과자를 담았다. 찻물을 끓이고 홍차를 우려내니 교무실에 향긋한 차 향기가 퍼졌다. 예쁜 다과상을 다 차리고도 아무도 오지 않자 손님은 언제 오냐는 물었다. 웃으며 그날 근무하는 실무사님과 방과후 강사님들, 행정 주무관님을 불렀다. 모두 모이니 10명이었다. 오늘 오시기로 한 특별한 손님이 다름 아니라 자신들임을 알고 다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둥글게 모여앉아 차향을 맡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잠깐이었지만 귀한 시간이었다. 손님을 위해서 보관만 하던 예쁜 그릇에 좋은 차, 맛난 과일과 과자를 먹으며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고 좋아들 했다. 내가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아껴둔 그릇에 담았을 뿐인데 다들 감동이라 했다. 그들은 몇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났을 때도 그날을 정말 특별하고 행복한 날이었다고 기억했다.

엄마의 그릇은 옷장 위에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세상이 바뀌어 더는 귀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껴둔 시간만큼 가족들이 사용했으면 훨씬 유용했겠지만 그 시절 엄마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의 손님용 그릇은 싱크대 안쪽에서 1년에 몇 번이나 의미를 찾았을까? 기꺼이 꺼내어 사용하자 모두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했다.

엄마의 그릇에 담긴 딸에 대한 마음만큼은 세월이 바뀐 지금도 변함이 없을 거다. 그러나 요즘은 변화하는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쌓아둘 필요도 아낄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좋은 물건도 좋은 말도 담아 두지 말고 전달하고 나누어야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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