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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숙

관기초등학교 교장

10시 30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와아! 하는 함성소리가 들린다. 하던 일 멈추고 얼른 달려 나갔다. 벌써 교감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전교생이 좁은 현관과 2층 계단에 빽빽이 서서 탁구 경기 응원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6학년 지성이와 초보 이선생님, 4학년 승환이와 체육담당 오선생님의 경기다. 체육선생님 팀이 유리할 것 같지만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 6학년 지성이와 4학년 승환이의 실력 차가 있기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점수는 10대 9였다. 1점차로 승환이네가 이기고 있었다. 실력자 오선생님의 서브를 초보 이선생님이 잘 막아내어 10대 10 듀스가 되었다. 숨이 막힌다. 응원하던 아이들도 모두 숨을 죽인다. 결과는 지성이의 서브 실수로 1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아, 참! 내가 이러고 구경만 할 일이 아니었다. 그 다음 경기가 나와 지윤이의 경기가 아닌가! 6학년 교실로 연습하러 갔더니 벌써 상대팀인 진호와 1학년 박선생님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방학 직전 1월 어느 날의 우리 학교의 풍경이었다.

학교경영을 하면서 가장 비중을 둔 것이 학생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었다. 선생님들은 작은 행사라도 추진하기 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의견을 묻고 그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하여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운영 과정 또한 최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학생들이 이끌어갈 수 있게 한다. 더디더라도 어설프더라도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7월 전교생이 속리산에서 직접 텐트를 치고 냄비에 밥을 해먹으며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했을 때 우리들은 그 믿음이 옳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자치활동의 결정판이 이 탁구경기였다. 지난 해 11월 전교생과 소통콘서트를 열었다. 학생들의 건의 사항 중 눈에 띄는 것이 탁구시합과 강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탁구가 학교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것은 작년 봄 현관에 탁구대를 놓고서였다. 미세먼지와 폭염으로 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작은 공간이라도 만들어주고 싶어 대형 화분을 치우고 현관에 탁구대를 놓았다. 탁구대 하나로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달라졌다. 먼저 6학년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였고 4학년 두 명이 쉬는 시간마다 탁구대 앞을 지키더니 어느새 형들과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현관에 모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건의사항을 들은 전교학생자치회에서 교내 탁구대회 계획을 교무실에서 브리핑을 했다. 학생들의 생각은 역시 창의적이었다. 하루 행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중간놀이 시간마다 학생 대 교사경기와 학생, 교사 한 팀씩 대결까지 하겠단다.

다음 날부터 탁구경기를 시작했고 12월 추위를 뜨거운 함성소리로 달구더니 1월까지 이어졌다. 탁구 초보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실망할까봐 틈나는 대로 뛰어 내려가 연습하고 학생들은 짝꿍 선생님을 가르치고 후배들을 연습시켰다. 현관과 6학년 교실에는 학생과 선생님들이 늘 함께 뒤엉켜 핑~퐁, 핑~퐁 탁구를 치고 작은 실수에 박장대소 하며 웃느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겨우 좁디좁은 현관을 내주었을 뿐인데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으로 즐거운 놀이문화를 만들어 나갔고 학교 오는 것이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전교학생자치회 기획, 운영, 4~6학년 학생 희망자와 교직원 참가자가 된 이 대회는 종업식과 졸업식을 앞두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종우승은 4학년 승환이와 체육박사 오선생님이었다.

새학기가 되면 또 좁은 현관은 아이들의 함성 소리로 시끌벅적해질 거다. 교장인 나는 미세먼지에도 폭염에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커다란 강당을 지어서 학생들의 두 번째 건의사항도 이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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