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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아지트를 찾아서 - 운학 박경동 서예가

간판 하나없는 소박한 단칸 작업실
'서예퍼포먼스 세계기록' 작가 유명
中 자금성·만리장성 퍼포먼스 계획

  • 웹출고시간2010.09.12 17:13:2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묵향 냄새 그윽한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 운학(云鶴) 박경동(55) 서예연구실.

변변한 간판하나 없는 2층에 자그맣게 자리 잡은 서예연구실은 말그대로 아지트다.

20평 남짓한 단칸방의 작업실은 40년 가깝게 서예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운학 박경동 서예연구실 벽에는 운학의 손떼가 잔뜩 뭍은 붓들이 가득 걸려있다.

ⓒ 손근방 기자
붓, 전각, 화선지 등으로 가득찬 운학의 작업실은 크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붓 한 자루와 글씨 쓸만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

길거리가 모두 자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운학 박경동 서예연구실에는 전서, 초서 등 자신이 쓴 각종 작품들이 벽에 전시되어 있다.

ⓒ 손근방 기자
그는 최근 중국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에서 '서예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다.

언제인가는 이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오늘도 막걸리 한잔에 목을 축이며 하얀 백지에 혼을 불어 넣고 있다.

영동군 심천면 기호리에서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운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 구학문을 시작했다.

재건학교와 집에서 천자문을 배우는 등 구학문에 눈을 돌린 운학은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형의 만류에도 불구 16살 때 대전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다.

배운 천자문 덕에 도장방에 취직이 된 운학은 붓글씨를 가르치는 서예학원에 심부름을 하면서 서예와 인연이 된다.

운학 박경동 서예가가 친구가 잘되면 좋다라는 의미인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글씨를 화선지에 혼신을 다해 쓰고 있다.

ⓒ 손근방 기자
당시 서예의 대가인 죽사 박충식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서예수업을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서예학원에서 박 선생으로부터 붓 잡는 법 등 서예의 기초 등 모든 것을 배웠다.

선생을 찾아다니며 사서삼경, 중국고전을 섭렵했고 중국산문 5천자도 그때 외웠다.

25살 되던 해 연애 결혼한 운학은 "서예는 쟁이로 남지만 전각은 예술로 남는다"는 스승님들의 충고에 전각실을 마련하고 도서관 등지에서 문화센터 강사를 하며 서예도 가르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85년 동아미전에 처음 출전했으나 내리 5번이나 낙방하자 1990년 충남 온양에서 당시 전각의 대가인 고석봉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았고 서울 동방아카데미 7기로 입학해 여초 김응현 선생으로부터도 서예를 배우는 등 혼신을 다했다.

1997년 대한민국서예대전 전각부문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았는데 대전과 충남북에서는 처음있는 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운학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혹사시킨 탓인지 '대인공포증'이란 병을 앓게 됐고 김진세 대전고검장의 소개로 한의원을 다니며 서예와 치료를 병행했다.

2000년도에 결국 고향인 기호리로 내려 온 운학은 혼자서 칩거하며 자신의 건강을 추슬렀다.

"병이 났게 되면 모두를 용서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봉사하겠다"는 기도를 했다.

기호리로 내려와 생활하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병이 나은 운학은 "창조주가 사람을 만들기 위해 혹독한 시련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속했던 '봉사, 자연사랑, 용서'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서예가 운학 박경동이 길거리에서 혼신을 다해 이 붓으로 서예퍼포먼스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손근방 기자
운학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막걸리'라고 표현한다.

막걸리는 쌀, 물 등을 이용해 잘 발효시켜 걸러야 막걸리로 탄생하듯이 즉 '서예가 곰삭아 자신이 되고 자신이 곰삭아 서예가' 된다고 말한다.

그는 주변에서 미쳤다는 말을 곧잘 들어왔다. 그래서 미쳤다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뭐든지 미쳐야 할 수 있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서예퍼포먼스에 눈을 뜬 것은 단칸방에서 서예연습을 제대로 못하자 마당과 길거리에서 서예연습을 하면서부터다.

이 때문에 지난 2006년 영동포도마라톤대회에서 5㎞를 달린 다음 1시간20분 동안 초서로 산문 787자를 쉬지 않고 써내려가 세계최초로 서예퍼포먼스에 도전해 한국기록원에서 인증하는 세계기록보유작가가 됐고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 기념으로 한국예술문화원에 초대돼 서예퍼포먼스로 2천840자, 화선지 1천424m를 4시간동안 써내려 가 한국최고기록을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8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우정교류행사에 초대받아 2㎞ 화선지에 글씨를 써 눈길을 끌었다.

운학은 이제 서예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 서예만 변화에 더딘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먹 색깔, 화선지 색깔을 과감하게 바꾸며 글씨 서체까지 파괴하는 실험에 도전하고 있다.

영동 / 손근방기자

"색깔 먹으로 파괴된 글씨연구 도전"

박경동 서예가

운학 박경동 서예가 인터뷰(사진)

서예도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색깔있는 화선지에 색깔있는 먹으로 파괴된 글씨 연구

"서예는 시대에 비해 변화가 너무 더딥니다. 시대와 환경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만 현대에 맞는 글씨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서예하면 하얀 화선지에 검은 먹으로 글씨를 쓰는 것으로 인식돼 있는데 이제는 색깔 있는 화선지에 색깔 있는 먹으로 파괴된 글씨 서체 등 인식된 고정관념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실험정신을 갖고 후배들을 위해 서예도 발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방사우인 지필묵연(紙筆墨硯) 중 벼루를 제일 좋아한다는 운학은 종이는 쉽게 변하고 붓은 예리하지만 빨리 없어지며 묵은 자신을 희생시켜 검게 만들어도 벼루는 둔해도 생명력이 가장 강해 벼루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선인관인지선(善人觀人之善), 송무백열(松茂栢悅), 화이부동(和而不同)으로 선한 사람은 좋은 점만 보게 되고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쁘듯이 서로가 화합하는 마음은 있지만 같지는 않다는 의미인데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하자는 뜻이라고 플이했다.

어머니가 태몽을 학이 회를 치는 꿈을 꿨다고 해 호를 운학으로 했는데 한 스님이 박경동 보다는 박운학이 났겠다고 말해 박운학으로도 불린다며 실험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예포퍼먼스 세계기록 보유작가인 운학은 대한민국서예대전초대작가, 제29회 북경올림픽기념 대규모 전각전 대한민국 10대작가선정, 한미우호교류초대전 초대작가선정, 초대전, 개인전을 비롯한 각종 수상, 영동대사회교육원, 영동문화원, 영동군청, 영동지청 등에서 서예강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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