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5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문화아지트를 찾아서 - 충주 향토음악 작곡가 백봉

지역명소·유적 등 고향노래만 40여년 작곡
'월악산' '탄금대 사연' 노래비 건립 이끌어
향토음악인협회 창립…대중 알리기 온힘

  • 웹출고시간2010.11.07 17:31:3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주옥같은 대중가요, 아니 향토색 짙은 대중가요를 아름다운 멜로디로 만드는 원로 작곡가가 충주에 살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 그의 '아지트'(스튜디오)를 찾아가 봤다.

충주의 관문인 충주시 문화동 457번지 익수한의원 5층에 마련된 향토음악 작곡가 백봉((白鳳·67)씨의 작업실은 40평 남짓 작고 단촐했지만 방문객들이 금방 정을 느낄만큼 정감이 어린다.

향토 작곡가 백봉씨가 상패와 감사장, 가수들과 찍은 사진등이 담겨있는 장식장에 서있다.

ⓒ 김주철 기자
둘러보니 작곡가로서 가장 귀중한 녹음실과 녹음과 관련된 각종 전자기기, 컴퓨터 등이 갖춰져 있고 ㄱ자 벽면 한면에는 그동안 발표한 음반과 테이프, 가요책자들이 빼곡하고 한면에는 각종 행사에서 받은 상패와 감사패, 각종 사진 등이 붙어 있어 작곡가 백봉씨의 인생역정을 짐작케 했다.

그중 2007년11월 제16회 한국가요창장인공로대상 시상식에서 받은 '상록수'상패의 글귀가 눈에 들어 온다.

'한국 가요 100년사의 산증인이며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남다른 열정과 불타는 창작열정으로 '월악산'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 가히 형극과도 같은 가요계길을 걸어오면서 동료 후배들을 위한 일에 늘 앞장서 왔다.이에 그뜻을 기려 이패에 담아 드린다'고 새겨져 있다.

작곡가 백봉을 그대로 표현해 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주의 향토작곡가 백봉씨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녹음기기를 조작하고 있다.

ⓒ 김주철 기자
지난2000년 이곳에 둥지를 튼 백씨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이곳에서 그동안 발표한 곡들을 영상물로 재편집도 하고 가수 지망생들이 찾아오면 상담이나 테스트도 하고 지인들이 오면 따뜻한 차도 마시면서 담소도 하고, 그러다 혼자 명상에 잠겨 40여년 노래인생을 반추해보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아지트'다.

작곡가 백봉씨는 본명이 이종학으로 1943년 월악산 기슭인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서 가난한 광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어머니가 광주리 장사로 입에 풀칠을 하며 자랐다.

이종학은 어렸을적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소위 동네 콩쿨대회에 나가 여러번 입상하기도 했다.그래서 가수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 15세때 서울로 무작정 상경, 청량리역과 서울역 대합실을 잠자리 삼고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작곡가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 17세때 우연히 청계천 청계다방에서 당시 도미도레코드사를 운영하는 작곡가 겸 가수 한복남씨(1919~1991년,빈대떡신사,엽전열닷냥 등)가 차를 마시는 것을 보게됐다.그래서 슬그머니 한씨의 찻값을 냈더니 한씨가 "네가 왜 찻값을 내느냐"며 나무래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가수가 그렇게 쉽게 되는게 아니다.집으로 내려가라"고 하면서 명함 한장을 줬다.

시골로 내려온 이종학은 하루도 빠짐없이 한복남 선생에게 편지를 썼고, 1년6개월만에 첫답장을 받았는데, "혹 서울 올 기회가 있으면 찾아오라"는 거였다.

그길로 한달음에 서울 청계천 다방에가 2일간 기다린 끝에 한복남씨를 만나게 됐다. 그래서 왕십리에 있는 한복남씨 집에 갔더니 편지덕분에 식구들이 다 알아봤다.

그후 한씨가 운영하는 도미도레코드사에 구경을 갔다.종학은 이때부터 공장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청소도하고 무슨일이든 다 했다. 그랬더니 착실하게 봤는제 "있으라"고 해 머물게 됐다.

1963년 '내사랑 리라','정든 내고향'등을 취입, 가수로 데뷔했으나 돈도 없고 백도 없는 처지에 히트를 시킬 방법이 없어 자신의 재능은 노래보다는 작곡이라고 생각해 진로를 바꿨다.한복남 선생으로부터 작곡기법을 배운 그는 1966년 유니버셜레코드사 전속 작곡가로 데뷔하게 됐다.첫 작품이 가수 오봉일이 부른 '돌아간 길 아련해'다.

향토음악 작곡가 백봉씨가 기타연주를 하고 있다.

ⓒ 김주철 기자
이후 오스카레코드사,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던 백봉은 1968년 '탄금대 사연'을 작곡, 백진주씨가 불러 충주에서 공전의 히트를 시켜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1971년 충주문화방송이 개국 프로그램으로 충주극장에서 '시민 노래자랑'을 하게 됐는데 심사위원을 맡게됐다. 이때 1년동안 전국을 다니며 '전국쇼-신인선발대회'를 열게 됐으나 가진돈 몽땅 날리고 알거지가 돼 덕산면으로 낙향하게 됐다.10여년을 매일 술을 마셔 알콜중독자로 전락했다.

1983년 폐인으로 월악산에서 칩거하며 보내던 중 '월악산'을 만들게 됐다.이것이 1985년 주현미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시키게 됐고 작곡가 백봉을 하산(?)하게 만들었다.

1990년 충주로 내려와 정착해 스튜디오를 차려 본격적으로 작곡에 몰두한 백봉씨는 이효정,문장대,금열,양나미 등 수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주고 데뷔를 시키면서 작곡가로 활동을 하게 됐고, 1992년 KBS, MBC가요제심사위원장, 1996년 CJB 박달가요제 심사위원장 등을 맡아 가수 지망생들에게나 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고 충주MBC라디오를 통해 '가요 50년사'를 재미있게 방송해 인기를 얻었다.

향토음악 작곡가 백봉씨와 '탄금대 사연'을 부른 가수 백진주씨가 노래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김주철 기자
백봉씨는 지역의 명소나 유적 등을통해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고향노래'만 40여년간 작곡해오고 있다.

그러던중 '우리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고향 노래를 계승 발전 시켜 보자'는 뜻을 품게돼 충주지역 인사들과 취지에 동참하는 전국의 작사,작곡가,가수 등을 모아 1997년 5월 충주에 본부를 둔 한국향토음악인협회를 창립, 전국에 10개 지부를 두고 있으며 2000년부터 매년 우륵문화제때 '대한민국향토가요제(창작가요제)'를 개최해 향토색 짙은 고향노래를 발굴, 보급해 오고있다.'고향노래만 불러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전국 단위의 가요제다.

200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평의원,2003년부터 명지대음대 실기고사 채점위원, 2009년 한국향토음악인협회 회장을 맡아 의욕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백봉씨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노래' , 특히 향토색 짙은 '고향노래'를 만들고 보급하고 대중들이 즐겨 부르게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백봉씨는 98년 충북예총 예술공로대상, 2003년 충북도 자랑스런 충북인상, 2003년 충주를 빛낸 얼굴상, 2004년 한국예총 가요발전 공로대상, 2005년 제천 문화예술상, 2008년 한국예총가요창작위원회 상록수상, 2009년 한국가요작가협회 가요창작공로상, 2010년 한국예술인총연합회 특별공로대상을 수상했다.

이런 백봉씨의 노력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2005년 탄금대에 '탄금대 사연'노래비가 건립된데 이어 오는10일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신륵사 입구 체육공원에 '월악산'노래비가 건립된다.

노래비 제막식은 오는 10일 오후 2시 월악리 현지에서 이 고장 출신 작곡가 백봉 선생와 가수 주현미, 기관·단체장,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열린다.

충주 / 김주철기자 kimjc@cb21.net

"고향노래부르기운동으로 승화"

백봉 작곡가

"나에게 노래는 인생 전체입니다.그중에서도 향토 가요에 대한 애착이 깊습니다."

충주시내 전경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5층 스튜디오에서 깡마르고 백발이 형형한 노 작곡가는 날카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노래인생을 반추했다.

워낙 가난한 시골출신이라 노래를 한다는 것이 가시밭길이었지만 노래를 만들다보면 어릴적 동무들과 뛰놀던 언덕이며 양떼를 몰고 다니던 강가 풀숲이며 나뭇짐 둘러메 꼿던 오솔길들이 아련히 떠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오선지에 음을 그리게 된다고한다.

"많은시련을 겪어 돈은 못벌었지만 자식들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런 아버지의 명성을 남겨 놓으려고 노력해 왔다"는 그는 "이제 고향노래를 만들던 사람으로서 고향 노래를 계승하고 발전 시켜 나가는데 남은 인생을 바칠 각오"라고 한다.

히트도 못시키는 고향노래가 뭐 그리 좋으냐고 묻자 "고향노래는 고향의 흙내음이 나고 그 지역의 특색 있는 명소와 역사적 유적을 알게해 애향심을 불어 일으킨다"며"랩 등 국적없는 노래보다는 향수어린 고향노래를 애송해야 애향심도 생기고 마음 씀씀이도 넉넉해질 것"이라며 "고향노래 부르기를 하나의 '운동'으로 승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충주 / 김주철기자 kimjc@cb21.net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